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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누리꾼 81% "한국 경찰 책임"


환구시보 "일방적 발표로 진상 증거 부족" 주장

(베이징=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민이 한국 경찰을 살해한 사건을 놓고 중국 누리꾼 80% 이상이 이번 사건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고 답해 한국인들과 극명한 인식 차이를 보였다.

중국의 대표적 포털 사이트 큐큐닷컴은 13일 중국 어민의 한국 해경 살해 사건에 관한 긴급 온라인 설문 조사를 시작했다.

오전 10시30분(현지시간) 현재 '이번 사건의 주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81%인 1만427명이 '한국 경찰'을 꼽았고, 19%에 해당하는 2천447명만이 '중국 어민'이라고 답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자국 어민에 대한 동정적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관영 매체의 논리에 익숙한 많은 중국인은 한국이 불법 어선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폭력'을 행사해 어민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격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날 "한국이 일방적인 소식을 발표했을 뿐 사건의 진상을 밝힐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날 외교부 류웨이민(劉爲民)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보도에 주의하고 있으며 상황을 알아보고 있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인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환구시보는 한 어업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해상 분쟁 사건은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며 "어느 한 쪽이 완전한 영상이나 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면 진상을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이어 "한국이 중국 어민의 불법 어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서 어민들의 폭력 대응 충동을 자극하고 있다"며 한국 경찰과 싸워본 적이 있다는 한 어민의 발언을 소개했다.

산둥성에 사는 이 어민은 "나를 잡으러 오는데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다"며 "보통의 어민인 우리는 누구를 다치게 하려는 게 아니라 30만∼40만위안의 벌금을 내지 않으려고 도망가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구시보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중국 매체들은 대체로 논평을 삼가고 이번 사건을 사실 위주로 보도하고 있다.

큐큐닷컴은 이번 사건을 조명하는 별도의 특집 코너를 마련해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이번 비극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한국은 합법적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라며 "억지로 폭력 법 집행을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