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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Blac out)현상이 가져오는 알코올성 치매 및 알코올 의존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치료의 첫 단계, 의학적 치료와 라이프스타일의 개발이 필요


알코올은 뇌에 다양한 작용을 한다. 신경 화학적으로 알코올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glutamate)의 작용을 억제하고,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의 작용을 강화한다. 독성학적으로 알코올은 신경세포를 파괴할 수 있는 물질에 속한다. 행동적 측면에서 알코올은 마신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한다. 이런 작용들이 음주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일으키는데, 아래에서 간단히 살펴본다.
블랙아웃(blackout)과 탈억제 :
급성 알코올 독성
블랙아웃이란 알코올에 의해 유발되는 일시적 기억장애를 일컫는다. ‘필름이 끊어졌다’고 하는 현상이다. 블랙아웃은 취해서 정신이 혼미한 것과는 다르다. 주위에서 보기에는 멀쩡하며, 옆사람과의 대화도 정상적이고 돈계산을 하거나 심지어 운전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서 전날 일을 떠올려 보면, 어떤 시간 이후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거나 드문드문 조각난 기억만이 남아있다. 술자리에서 자신이 주위를 당혹스럽게 하는 행동을 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되고, 잃어버린 가방을 어디에 놔두고 왔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상당히 난감한 경험이 된다. 블랙아웃은 알코올의 급성 신경독성 때문에 생긴다. ‘작업기억(순간순간의 행동에 필요한 정보)’은 정상적으로 형성되지만 이 내용이 장기적 기억으로 저장되는 과정에 장애가 생긴 것이다.

장기적 기억 형성을 위해서는 뇌 해마(hippocampus)의 글루탐산성 신경 세포 활성이 필수적인데, 알코올은 이를 억제한다. 비유하자면 블랙아웃이란 워드프로세서로 열심히 작업은 했는데, 저장하지 않고 끝내버린 것과 같다. 한 연구에 의하면 알코올 혈중 농도 추정치 0.25~0.3%(소주 2병정도)일 때 10%가 블랙아웃을 경험하지만 어떤 사람은 혈중 농도 0.1%에서 겪기도 한다. 위험 요인으로는 타고난 유전적 취약성, 고령, 여성 등이 지목되지만 한 개인에서도 신체적인 피로상태나 신경 안정제 복용 상태 등에서 블랙아웃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음주패턴과 관련되어서는 빨리 마시기, 안주 없이 마시기, 알코올 농도 높은 술에서 잘 나타난다.
음주 후 난폭하거나 무례해지는, 흔히 말하는 ‘나쁜 술버릇’은 의학적으로는 탈억제(disinhibition)라고 하는데, 사회적 상황에서 본능적 행동이 나타나는 것을 억제하는 뇌 전두엽(frontal lobe)의 작용이 알코올에 의해 억제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역시 알코올의 급성 신경독성 현상의 일종이다. 블랙아웃이나 탈억제 현상을 한두 번 겪는다고 ‘알코올중독’인 것은 아니지만, 이런 독성 현상을 자주 겪는 사람은 음주 통제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알코올성 치매 (alcohol-induced dementia):
만성 알코올 독성
치매는 원인에 관계없이, 만성적이면서 돌이킬 수 없는 뇌손상의 결과로 나타나는 기억 및 인지기능 장애를 말한다. 치매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질환인 알츠하이머 병에서는, 외인성 독성물질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전적 요소 등의 영향으로 뇌세포가 자체적으로 손상을 입는다. 알코올은 치매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지목할 수는 없지만 알코올이 세포 독성을 지닌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수십 년간 술을 많이 마셔 온 사람에게서는 치매가 잘 발생한다.

만성 음주자에서 치매가 발생하는 한 가지 요인은 술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때(금단) 뇌세포의 과잉 활성이 일어나서 뇌손상이 오는 것이다 (Wernicke-Korsakoff 증후군). 만성적인 심한 음주자는 알코올 금단을 반복해서 겪는다.

다른 요인은 만성적인 음주 결과, 간 등 다른 장기가 손상되고, 이에 의한 이차적 현상으로 뇌에 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영양부족, 흡연, 취중 사고에 의한 두부손상 등 만성 음주자에게 흔한 ‘위험한 생활 패턴’도 치매와 관계될 수 있다.

통상적인 양의 알코올은 만성적으로 섭취하여도 직접적으로 뇌세포 손상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인지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수개월 음주를 중단하면 회복이 되므로 치매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치매가 이미 발생한 사람이라면 알코올의 직접적 작용에 의한 인지기능 장애도 더 심할 것이다. 한편, 만성 음주자에게서는 치매 뿐만 아니라 우울증 및 환각을 동반한 정신병적 상태도 발병하는데, 음주를 중단해도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알코올 의존 (alcohol dependence):
음주를 조절할 수 있는가?
음주 행동은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술을 구하기가 매우 쉽고, 술을 권하는 관습이 있고, 술이 있어야 친목이 유지된다고 믿으며, 술을 잘 마시는 것이 덕목이나 용기로 간주되기도 하며, 술마시고 실수하는 것에 대해 관대하다. 이런 문화 아래서 우리는 정신-신체적 웰빙을 해칠 정도의 음주조차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과도한 음주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음주 문화가 바뀌면, 음주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문제의 일부분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술 때문에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주를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 이것이 알코올 의존(중독)이라는 병이다. 음주 문화는 지역마다 많이 다르지만, 알코올 의존의 발생률은 세계적으로 차이가 적어서, 전 인구의 10 % 정도가 평생 한번은 알코올 의존에 빠진다고 한다. 그만큼 알코올 의존은 흔한 병이다. 대중매체에서 인생 파탄자로 묘사되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질환의 매우 심한 극단에 속한다.

더 많은 환자들은 가정과 직장 생활을 힘들게 유지해 나가면서 자신이 알코올 의존이라는 병에 걸린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비록 술을 마시지만 내가 좋아해서 마시는 것이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어’ 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이 술을 마시면 안될 상황에 실제로 처하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힘으로 음주를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알코올 의존은 ‘얼마나 많이 마시는가’보다는 ‘마신 뒤에 어떻게 되는가’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예컨대 반복적으로 블랙아웃을 겪는다면, 또한 블랙아웃을 겪을까봐 조심하면서 마시기 시작하지만 발동이 걸리면 끝까지 마셔야 한다면, 마시는 양과 관계없이 알코올 의존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즐기기 위해 자신의 의지하에 마시기 시작하더라도 나중에는 안 마실 수 없는 강박 상태가 되어 스스로 조절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알코올 의존에 대한 대책
다른 만성 질환과 마찬가지로, 알코올 의존도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치료의 첫 단계이다. 술을 끊겠다는 자신의 결심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일찍 포기하고 자신의 문제를 부인하면서 치료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치료 받으라는 주위의 권유조차 거부한다. ‘알코올중독자’라는 단어가 바로 ‘인격 파탄자’라는 낙인으로 인식되어 스스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코올 의존은 비만이나 당뇨병처럼 현대인에게 흔한 만성 질환의 일종일 뿐 도덕성 결함이 아니다.

알코올 의존 환자의 뇌에서는 술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는 회로가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된다(‘음식 중독’인 비만이나, 인터넷 중독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최근 의학의 발전에 따라 이 갈망 회로의 동작을 억제하는 약물도 개발되어 사용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학적 치료와 아울러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개발이 필요하다.

즉 좋은 일, 나쁜 일, 심심해서, 스트레스 받아서 등 술을 찾게 하던 상황들에서 ‘술이 아닌 다른 방법’을 개발해 대처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