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톤에 의하면,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원형인 이데아, 복제물인 현실, 복제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현실은 인간의 삶 자체가 복제물이란 것이고, 시뮬라크르는 복제물을 다시 복제한 것을 말한다.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는 이러한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인 시뮬라크르 개념을 근간으로 한 사이버펑크 소설이다. 과거 SF소설이나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됐던 2000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에 와서도 우리는 사이버펑크물의 편린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서 지금은 SF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화려한 CG를 앞세워 몇몇 소재만을 부풀리는데 급급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깁슨의 소설『뉴로맨서』는 정치적인 관점에서나 윤리적인 관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뉴로맨서』에서 사이버 스페이스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것은 현실의 불완전성을 초월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유혹이다. 후기구조주의 이론과 함께 오래 전부터 신뢰받았던 경계인 인간과 기계, 자아와 타자, 육체와 정신, 환상과 현실 등을 분해·해체한다. 명확한 경계가 사라지면서 오로지 새로운 조합과 변화된 상태만이 강조된다. 사이버 스페이스가 제공하는 것이 ‘퇴행적 판타지’라고 설명하면서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비윤리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뉴로맨서’에 나오는 배경과 용어는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지만 이 소설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80년대 중반에 쓰여진 소설이라는 점, 그리고 이 소설을 쓸 당시 깁슨이 PC를 전혀 다룰 줄 몰랐던 컴맹이었다는 점은 우리를 다소 놀라게 한다. 우리는 화려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명목아래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며 첨단화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편리한 세상에 살면서 과연 인간은 인간자신이 추구하는 길을 향해 가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우리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오고 있다는 점, 그래서 인간이 사이버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로봇과는 어떤 관계가 바람직한 것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30년 전에 이미 이런 변화를 예상이라도 한 듯 깁슨은 그의 소설에서 오늘과 같은, 또는 가까운 미래의 우리 세상을 펼쳐 보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의 소설을 통해 미래 우리의 삶을 반추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