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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의 문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행복한 만남

감성을 채우는 '접촉', 그러나 아직도 현대인은 목마르다


현대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로 산다는 것은 타인과의 만남, 즉 접촉이 없음을 뜻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 가운데서 사람과 사물 등과 어떤 접촉을 하며 살아가는가?

점차 접촉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면서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메신저를 통해 용건을 전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메신저라는 위대한 발명품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은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메일조차도 더 이상 이용하지 않는다. 메신저로 모든 일상적인 소통을 대신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휴대폰과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려 한다. 기술발달은 그러한 소통가능성을 이뤄주었다. 하지만 기술발달에 따른 편리성과 속도성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왠지 모를 허전함까지도 메울 수는 없다. 접촉은 바로 그 빈자리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수십 명의 메신저 친구들과 매일 ‘통(通)’하지만, 결국 깊은 소통은 없는 것이다.

결국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혁명적인 변화도 있지만 사람들의 감성까지 바꾸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터치(touch)+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뜻하는 ‘터치테인먼트(Touchtainment)’가 관심을 끌고 있다. 기술의 발달에 감성을 덧입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마케팅 전략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이테크(Hi-tech)’와 ‘하이터치(Hi-touch)’의 만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근 대세를 이루고 있는 ‘터치 스크린’이다.

특히 휴대폰과 MP 등의 업계에서는 터치스크린으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터치스크린은 과거의 버튼을 없앴다. 터치스크린을 사용하는 이유는 빠르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과거 버튼 방식이나 키보드 등의 거추장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는 또한 디자인의 심플함과 더불어 공간활용과 시간절약도 덤으로 준다. 하지만 그보다는 금속성의 기계가 전달하는 차가운 이미지를 극복하고 소비자가 좀 더 친근하게 기계와 접속할 수 있는 감각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그 외에도 사이버상의 ‘애완견 육성 게임’이 있다. 과거에는 애완견을 기르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이제는 터치스크린을 통해 애완견을 마치 자신의 손으로 직접 기르는 듯한 느낌을 제공받는다. 이는 사이버상의 애완견과 내 손길이 서로 교감을 하는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직접 게임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훨씬 큰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터치테인먼트’와 관련해서 ‘맨발노래방’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어버리고 온돌방이나 흙, 모래밭에서 노래하는 것이다. 맨발이 주는 촉감을 느껴본 사람은 그 느낌을 알 것이다. 맨발의 접촉을 강조하는 ‘맨발노래방’은 접촉이 사라진 현대 도시에 대한 반발이다. 도시는 시멘트 덩어리이다. 아파트는 도시 생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파트나 동네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은 얼마 되지 않은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더 흙을 만져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자연이 제공하는 안락함과 편안함이 인간의 감각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흙을 만지거나 밟을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 플라스틱이나 딱딱한 기계 덩어리를 만지는 게 대부분이다. 만지는 즐거움은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와의 끊임없는 접촉을 경험한다. 기술의 발달과 도시문명은 갈수록 접촉의 기회를 없애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점차 따뜻한 접촉은 사라지고 있다. 스킨십이라는 사람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접촉 또한 성추행이나 유흥문화로 변질되고 말았다. 유흥과 쾌락을 위한 접촉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돈으로 접촉을 구매하는 것이며, 온전한 교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간적인 쾌락을 위한 것이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접촉을 잃어버린 지금, 사람들은 오히려 기계를 통해, 혹은 사이버상에서 접촉에의 갈망을 표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얼마 전 ‘안아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들고 나타난 ‘프리 허그(Free Hug)’ 운동은 현대인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외로움에 떠돌고 있는지를 대변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체온을 나눔으로써 타인을 위로하고 자신이 위로받는 것이 바로 ‘프리 허그’ 운동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있다. 외국에 있는 사람과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연락하고 지낸다. 그와 같은 잦은 만남에도 접촉에 대한 욕망을 지속하는 것은 우리가 사회가 갖고 있는 만남의 실체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테크놀로지와 관련된 다양한 마케팅 분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접촉’에 대한 욕망은 증가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직접적인 것보다는 간접적인 경험이 지배하고 있는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경험은 단지 머리 속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몸 그 자체로도 기억한다. 이렇듯 접촉은 감성을 일깨운다. 이성의 영역을 넘어선다. 디지털은 철저하게 이성에 기반하고 있다. 0과 1의 조합을 통해 이뤄지는 디지털의 세계는 차가움과 단순함의 결정판이다. 하지만 디지털은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감추려고 한다. 그 전략은 따뜻한 감성으로 자신을 감싸고 포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디지털의 차가운 몸을 잊고 외부를 감싼 따뜻한 외피에 속는다. 그 외피는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접촉(touch)’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부활하고 있는 ‘터치’는 이성과 감성이 만나는 감각의 지대에서 차가움과 단순함을 이기기 위한 처절한 노력일지도 모른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