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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치의 토대에 문화의 정치가 있다.” 정치가의 말치고 너무 화사하다. 그러나 프랑스의 전 대통령 프랑소아 미테랑이 1988년 루브르 미술관 확장공사 현장에서 이 말을 했을 때,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시비하는 자 없었다.

이 나라 통치자들은 기념비적 건조물을 세우는 집념이 각별하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궁전으로부터 퐁피두 문화예술전당, 지스카르 데스탱의 오르세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눈부시게 화려한 걸작품 목록이 길기도 하다.

여기서 하필 유리 피라미드를 말하는 것은 그 보석과 같은 아름다움 때문이지만, 그 파란만장한 생성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미테랑이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 M. 페이에게 루브르 확장공사 설계를 위임했을 때, 오천 오백만 프랑스인의 압도적 다수가 거국적으로 맹렬히 반대하여 나라가 마치 큰 벌집 쑤셔 놓은 듯했다.

르 꼬르뷔지에를 위시하여 기라성 같은 현대건축의 거장들을 배출한 프랑스가 왜 외국인에게 이 중대한 일을 맡겨야 하는가. 미국인 건축가를 초빙한다 해도 자존심 상하거늘 중국계는 또 뭐냐고 분개하는 인종차별마저 등장했다. 미테랑이 무슨 전제군주냐, 국제현상설계도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나라 제일의 문화재를 망칠 짓을 감히 할 수 있는가. 프랑스의 지성지 르 몽드 마저 반대 캠페인에 앞장섰다.

그러나 미테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페이는 미국에서 전위예술과 첨단기술을 마스터하여 가장 시대를 앞질러 가는 건축가다. 동시에 중국의 유구한 문화와 교양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최적임자라고 국민을 완강하게 설득,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1989년 페이는 현대건축의 정화를 완성시켜 미테랑에게 보답하고 프랑스에 영광을 안겨 줬다. 그는 말했다. “루브르 확장설계를 타진 해 왔을 때, 나는 외경의 마음으로 압도됐다. 이 미술관은 예술의 파르테논 신전이다. 그 어느 부분도 바꿀 수 없다. 신성모독의 중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물에 전혀 손대지 않고 나폴레옹 광장의 지하로 들어갔다. 세느 강이 바로 곁을 흐르기 때문에 깊이 팔 수는 없었고, 채광을 위하여 유리 피라미드를 세웠다.

미테랑과 페이를 매도하던 프랑스인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합리성을 추상의 극한까지 추구한 이 유리 피라미드야말로 가장 프랑스적인 걸작품이라는 격찬이 자축의 팡파르가 되어 터져나왔다.

일찍이 폴 발레리가 개탄한 바 있다. 새롭고 신기한 것,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 한마디로 놀라운 것이 아름다움을 압도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속되고 야한 흥분이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개인적 독창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병”이라고 이 시인은 갈파했다.

그러나 페이는 이 유혹을 물리쳤다. 그는 프랑스의 위대한 정원 설계가 르 노르트의 기하학적 디자인을 깊이 연구했다. 원 건물의 삼분의 이 높이로 무색투명한 피라미드는 광장의 모든 시점에 루브르 전체의 모습을 나타내게 한다. 항상 변하는 파리의 하늘은 피라미드의 무드를 무상하게 바꾸고, 해가 지면 발광체가 되어 별에서 날아온 조각품이 된다.

페이는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의 형상을 그대로 본떴다. 사변의 각도가 더 가팔라지면 지나치게 위압감을 줄 것이고, 더 완만해지면 주저앉는 느낌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옛사람의 디자인이 가장 완벽했다는 것이다. 발레리가 만일 다시 살아온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창작정신과 방법이 여기 구현되어 있음을 볼 것이다.

레오나르도와 발레리도 상상 못했을 것은 유리 피라미드의 세 저변을 둘러싸고 흐르는 물과 분수다. 옛날 피라미드가 무겁고도 밀폐된 돌무덤인데 반하여, 페이의 피라미드는 맑은 공기처럼 가볍게 물위를 떠가는 작은 요트의 느낌을 준다.

그러나 유리 피라미드는 한갓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페이의 천재는 구조적으로 독립된 지하의 역삼각형 피라미드에서 시작하여 펼쳐지는 2백만 평방피트의 새 공간에 나타나 있다. 중국 미국 프랑스를 모두 넘어선 세계의 정상이 그곳에 있다.

대통령으로서의 미테랑은 그 평가가 단순하지 않다. 그의 외교정책, 특히 차드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정책은 비판받아 마땅하고, 엄청난 규모의 무기수출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허나 그는 루브르 확장뿐 아니라, ‘호국의 대 아치’ (La Defense, Grande Arche), 미테랑 국립도서관등 수많은 기념비적 건물들을 세워 프랑스의 국위를 선양했다. 그에 비하여 후임자 시라크는 별 볼일 없는 용렬한 국가원수로서 기억될 것이다.

페이를 위해 소수의 인사가 큰 공을 세웠다. 미테랑의 오른 팔이 되어 물밑에서 극비리에 일을 추진했던 비아지니, 온 국민을 상대로 맹렬하게 페이를 옹호한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의 이름을 특기해두고 싶다.

퐁피두 전 대통령의 부인이 유명을 달리한 남편의 정적의 프로젝트를 적극 지지하여 비판의 예봉을 막아준 것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프랑스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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