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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시대의 반항아

앤디 워홀과의 만남


튀고 싶은가? 돈을 벌고 싶은가?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되고 싶은가? 젊은이라면 누구나 가질 만한 이런 욕망들을 결코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고 그대로 표출해 내 끝내 성공한 사람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자기만의 독자적인 세상을 구축하고 멋있게 살다 간 앤디 워홀(Andy Warhol)을 소개한다.

“비즈니스는 예술이고 예술은 비즈니스다.”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 우리 모두 기계가 되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유명해지고 싶다.” 이게 점잖은 예술가가 할 소린가? 그러나 그에게 ‘대중적’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큰 가치였다. 대중예술, 팝아트(Pop Art)의 출발이다. 대중적이어야만 성공하는 시대, 팝아트는 한 마디로 대중 소비주의의 산물이다. 소비주의의 미덕은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소비하는 것이다.

앤디 워홀은 말론 브란도의 사진을 지니고 다닐 정도로 대중스타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마릴린 먼로, 재클린, 모택동, 혹은 범죄자에 이르기까지 대중적 인물들의 초상화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유명인들의 초상을 격자형태의 구성으로 반복 배치하여 인물의 개성을 제거하고 마치 하나의 기호와 같은 상태로 변화시켰다. 매스미디어가 쏟아 내는 과도한 이미지의 생산을 형상화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매스미디어가 지닌 독보적 권력을 상징한다. 스타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예술작품을 대할 때 매우 가식적이다. 짝퉁 명품 한 두 개쯤은 누구나 가지고 다닌다.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다. 식별할 능력도 없다. 단지 유명작가의 작품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열광한다. 예술과 포르노가 경계 선상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보다는 평론가의 눈치를 보는 게 그 증거다. 예술은 한마디로 창작과의 전쟁이다. 자신의 고유한 화법을 찾아 내지 못하면 그것으로 화가의 생명은 사라진다. 현대 화가들의 추상작품을 볼 때면 이것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떤 작품은 전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앤디 워홀은 처음부터 솔직했다. ‘유명한 것’을 좋아했고 그것을 선택하여 자신이 꿈꾸던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유명한 배우, 끔직한 비극, 통조림, 심지어 지명수배자 조차 연속선상으로 배열하고 놀라운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창작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앤디 워홀은 1928년생으로 이미 20년 전에 죽었다. 이 할아버지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삐죽삐죽하게 세운 펑크 스타일로 마릴린 먼로를 대동하여 21세기를 찾아왔다. 솔직하고 싶은 사람, 창의력에 굶주린 사람, 독특한 색채 감각에 놀라고 싶은 사람, 6월 10일까지 서울의 삼성미술관 리움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