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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한 정신과 의사가 뜻밖의 얘기를 들려줬다. 인구 5백 명에 한 사람 꼴로 정신이상자가 있다는 것이다. 인구 3백만의 세인트루이스에 6천명의 문제인간이 있다니! 마침 합석했던 뉴욕에서 온 친구가 “그건 말도 안 된다. 맨하탄에는 최소한 두 명에 한 명은 미친놈이다.”고 해서 좌중이 웃었다.

캐임브리지 대학에서 그녀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5백명 당 정신이상자가 한 사람 있다는 이 비율은 세계도처 모든 공동체에 골고루 퍼져있는 평균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분석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는 인간 모두가 미쳐서 살인과 같은 극악한 짓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신이상자 5백 명에 한 사람 정도가 반사회적 행동을 할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무릇 정상과 비정상은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고,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연속선상에 나타나는 유동적 구분일 뿐이다. 광기(狂氣)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더라도 그것이 어느 단계에서 정상을 벗어나는지 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정신이상은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각개인의 행태를 서로 다른 문화가 각기의 기준을 만들어 정하는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지능지수가 너무 낮아 분별력이 전혀 없는 사람, 독극화학 물질이 체내에 들어가거나 뇌진탕 등으로 두뇌가 입은 손상 때문에 발광하는 등, 극단의 경우를 제외하면 비정상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경솔하다. 자칫하면 정상을 자처하는 다수가 소수에 대하여 가하는 독선적 횡포일 수 있다. 예컨대 구약성서에 나오는 얘기를 내세워 동성애자들을 박해해온 것은 다수가 소수에게 저지른 집단 범죄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의 선인들이 발광을 실성(失性)이라고 한 것은 사안의 핵심을 찌른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맑고 고요한 물과 같은 것인데, 강한 욕구 때문에 이것이 탁해지고 거칠어진다. 이것을 방치하여 극도로 심해지게 놔두면 성(性)을 잃어버리는 상태까지 간다는 것이다.

이 위험한 욕구를 의리(義理) 정신으로 통제해야 한다. 이 통제는 자연히 이루어 질 수 없다. 가르침과 배움, 그리고 반복되는 실천을 통한 인격도야의 길고도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이룩할 수 있는 과제다. 효제(孝悌)를 중심으로 한 가족윤리는 그 효력이 뛰어났고, 이것이 안 통하는 경우 일가친척까지 벌하는 족징(族徵), 한 마을전체를 벌하는 인징(隣徵)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조가 5백년이나 살아있었던 것은 유교적 이데올로기 장치와 무자비한 법가적 집단처벌을 병행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연좌제는 배척받게 됐다. 행위자 개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행동에 도덕적 책임과 법적 처벌을 국한하게 된 것은 크나큰 진보다. 개인이 저지르는 범죄를 확대하여 그가 속한 집단을 단죄하는 것을 우리는 원칙적으로 거부한다.

1881년, 한 니힐리스트가 황제 알렉산드로 2세를 폭탄으로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를 휩쓴 포그롬(pogrom, 계획적인 유대인 학살)이 오늘날 미국이나 서유럽의 선진국들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현될 가능성은 현저히 줄은 듯 하다. 그러나 족징 인징이 현실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멸시와 혐오감, 적개심이 되어 대중심리의 깊고 어두운 곳에 잠복해 있다가 사소한 일을 계기로 촉발되어 암세포처럼 퍼져 나갈 수 있다.

이를테면 예외적인 개인의 불상사마저도 전파를 타고 그가 속한 집단전체의 이미지로 확대ㆍ투영되어 모든 사람의 뇌리에 각인된다. 한국인과 한국계 모두의 행동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우리 가운데 누가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함께 가책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다. 한국인에 대해 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린치가 무서운 것이 아니다. 불이익이 두려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무도 단죄하는 자 없어도, 하늘을 보기가 부끄러운 것을 어찌하랴. 이것이 숨길 수 없는 우리의 정서다. 이번 총기사건을 정신이상이 있는 한 개인의 우발적, 독립적 사건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즈음 우리와 모습이 같은 중국ㆍ일본 등 동아시아 사람 모두에게까지 우리가 누를 끼친 것을 참담한 마음으로 자숙(自肅)하고 있다.




[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