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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 신드롬

스탕달은 나폴레옹 휘하의 장교로서 수많은 전투에 참여했다. 이탈리아 원정 때 그는 이 나라를 깊이 존경하고 사랑하게 됐다. 후에 다시 찾아간 이탈리아에서 그는 백약이 무효한 중병에 걸려 기진맥진하여 파리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병은 곧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탈리아에서 너무나 많은 예술의 걸작품들을 감상하다가 이에 압도되어 병이 났었다고 판단한 호사가들이 이를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이름하였다.

심미적 체험만으로 병에 걸린다는 것은 믿기 어렵고, 아마도 종교적 분위기, 발터 벤야민이 ‘아우라’(Aura, 靈氣)라고 한 신비적 체험이 화근이었을 것이다. 스탕달은 종교적이 아니었기에 성령이 내리는 희열과는 동떨어진 일종의 억압된 정신의 위기를 겪었을 것이다.

스탕달보다도 종교로부터 더욱 멀리 서 있는 프루스트는 샤틀레 성당의 미사가 바이로이트에서 열리는 바그너 음악제에 비할 수 없이 더 심오한 감동을 준다고 했다. 원래 종교의식(儀式)에 그 뿌리를 두는 예술이 종교가 영험을 잃고 난 뒤, 예술을 위한 예술로 순수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프루스트는 내다본 것이다.

카발라까지 들먹일 것 없이, 신비로운 예술적 체험은 오늘도 살아서 우리에게 온다. 필자가 파리의 상트 샤펠 성당에 갔을 때 동행한 동료가 넋을 잃은 적이 있다. 마침 저물어 가는 창백한 겨울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눈부신 칼레이도스코프를 펼쳐 요기(妖氣)를 가득 채우니, 그는 쓰러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부축해 그 자리를 나오려 했으나 그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스탕달 신드롬이 그를 압도한 것이다.

기계적 복제기술의 발달로 예술의 본질을 이루는 아우라가 무너지는 것을 벤야민은 슬퍼했다. 그러나 예술의 정치화를 가져온 기계적 복제에서 그는 인간해방의 가능성을 봤다. 복잡한 사연을 너무 단순화하면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므로 벤야민 얘기는 접어두고, 오늘날 예술의 총아인 영화를 생각한다.

이차대전이 끝난 후 유럽은 대량 살육과 파괴로 황폐의 극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 정신의 폐허에서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이 인간회복에 이바지한 공적은 참으로 깊고도 넓었다. 로셀리니, 데 시카로부터 펠리니에 이르는 감독들의 영화는 찢기고 이지러진 사람들에게 평상심(平常心)을 돌려줬다. 요즈음 중동에서 끝도 없이 자행되는 살육도 결국 영화예술을 통해 해원(解怨)하게 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무릇 유식한 인사들은 영화를 깎아 내리기 좋아한다. 사유가 주로 언어를 매개로 하는 개념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상품성과 오락성을 넘어선 예술로서의 영화조차도 이들은 그 직접성을 들어 멸시한다. 원래 스테인드글라스의 기원은 승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문맹이던 시절, 예수님과 사도들의 행적을 신도들에게 그림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 제작이 시작됐다. 활동사진이 대중의 현실도피와 말초신경자극을 위한 오락으로 발전해온 것도 무식꾼을 위하는 면에서는 그 사정이 비슷하다. 이 경향은 앞으로 더욱 심해지고 악화될 것이다.

그러나 간혹 만나는 영상은 상트 샤펠의 빛과 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토마스 만의 명작을 영화로 하여, 이와는 전혀 다른 체험을 준다. 만이 문필가 구스타프 아셴바하의 내면세계를 허무주의, 유미(唯美)주의로 밝혀주는데 비하여, 비스콘티는 죽음의 베니스를 그 전체의 분위기로써 열어 보인다. 문필가 주인공을 작곡가로 만들어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들려주는 것은 놀라운 착상이다.

작가도 철학자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영화만의 자유로움과 직접적 현재성은, 우리가 영원히 저버릴 수 없는 유토피아의 꿈에 필요 불가결한 빛깔의 세계다. 그것은 또 음악과 같은 시간 예술의 근거이기도 하다. 한국의 비스콘티가 보여줄 빛을 기다린다.
* 필자 약력
서울대와 뉴욕주립대에서 철학 전공
중앙일보 기자
계명대학, 브록대학(캐나다), 남일리노이 대학에서 교편
자유기고가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