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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문화 총결산] 2006년 문화를 돌아보는 시간

'괴물'이 지배하는 '마빡이'의 일상


혼종과 트랜스로 문을 열었던 2006년이 지나가고 있다. 다른 해에 비하면 올해는 상대적으로 문화적인 큰 사건은 드물었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흐름이 문화계 전반을 끌어왔음을 알 수 있다.

연초에는 영화 ‘왕의 남자’의 폭발적인 관람으로 인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모두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왕의 남자’의 성공이 반가운 것은 무엇보다도 스타마케팅이나 엄청난 제작비의 물량으로 인한 흥행이 아니라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관람객이 점차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은 ‘왕의 남자’의 흥행과는 달리 한미 FTA의 선결요건이었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특히 ‘한미 FTA’가 방송 및 통신 분야를 비롯한 문화 영역에서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계의 관심을 끌었다.

상반기의 가장 큰 이슈는 ‘2006 독일 월드컵’이었다. 이 열기는 오히려 문화예술계의 어깨를 잔뜩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영화 개봉, 뮤지컬, 책의 출간 등 일정의 상당수가 월드컵 이후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에 대한 기억 때문에 방송사와 대기업 통신업체들은 응원 열기를 고조시키려고 애썼지만, 자발성에 기초하지 않은 대중들은 자본과 국가·민족 이데올로기로 자신들을 불러내는 방송국과 대기업을 외면했다. 2006년 월드컵은 2002년과 비교해 축제와 광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도록 했고, 우리 시대의 ‘대중’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졌다는 점이 문화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이후 한국 사회에는‘괴물’이 등장했다. ‘괴물’은 감독의 상상력(시나리오)과 연출력,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버금가는 제작비와 컴퓨터그래픽 기술, 연기 등이 종합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이루며 최고 흥행 영화로 떠올랐다. 하지만 ‘괴물’이 흥행에 성공을 거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사회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괴물’의 창조 때문이었다. 영화‘괴물’은, 1970~80년대 우리를 억압하던 경찰, 군인, 탱크 등의 물리적 폭력과는 전혀 다른 ‘폭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은 미군 범죄, 사회적 양극화, 한미 FTA, 아파트분양가, 우리 안의 욕망 등을 토해낸다.

‘괴물’이 사라지고 나자 한국사회는 ‘웃음’이 지배했다.

우리 시대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모님’은 현실을 모른다. 그래서 항상 엉뚱한 말을 할 수밖에 없고, 자기 스스로 감추었던 이중적인 성격이나 품성을 드러내고 만다. 관객들은 사모님의 가면을 조롱한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에 집착하는 행동이나, 자신이 경험하는 현실 외에는 전혀 모르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모습은, ‘사모님’의 얼굴 속에 담겨 있는 우리의 얼굴이다. ‘사모님’의 뒤는 지극히 단순하고 반복적인 ‘마빡이’가 이었다. 마빡이는 자신이 왜 무대 위에서 ‘마빡’을 때리는지를 모른다. 이마가 빨개질 때까지 계속 때릴 뿐이고 반복 행위는 결국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낸다. 어쩌면 ‘마빡이’는, 오늘날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반복과 단순함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06년을 뒤흔든 ‘된장녀 신드롬’은 한국사회의 다양한 모순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된장녀’라는 표현은 우리 사회의 젊은 여성들이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테이크아웃(takeout)’ 커피만을 고집하면서 그 잔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비꼬면서 생겨났다. 이는 대학을 졸업후 직장을 구하지 못한 20대 백수들이, 된장녀에 대한 비난을 통해 자신들이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의 한풀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즉 ‘된장녀’는 현대 자본주의 욕망의 표상이다.

된장녀 신드롬의 한편에는 ‘브런치(brunch)’가 있다. 브런치는 ‘breakfast’와 ‘lunch’의 합성어로서, 젊은 여성들의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서 자주 등장했던 단어인데 이는 뉴욕커의 대표적인 유행으로, 독신 여성들의 증가, 주 5일 근무제의 확산, 해외 생활을 경험한 젊은 층의 증가 등이 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브런치에 해당하는 한국말은 ‘아점’이다. 브런치가 중상류층이 여유를 즐기는 방식의 ‘선택 사항’이라면, ‘아점’은 그냥 집에서 먹는 어쩔 수 없는 ‘필수 사항’이다. 대표적으로 45만 명에 달하는 청년 실업자들은, 브런치 ‘문화’와 동떨어져 있으면서 거의 매일 ‘브런치’를 ‘즐기고’(?) 있다. 이처럼 브런치 문화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현상이다.

다음은 ‘주몽’과 ‘황진이’로 이어지는 ‘사극 열풍’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사극열풍은 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소재 발굴 차원에서 역사적 자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몇 년간 이어온 한류 열풍과 고구려, 독도 분쟁에 따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등이 결합된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한글패션전시회’와 같은 매우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모습도 많이 선보이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특히 ‘황진이’로 대표되는 ‘기생 신드롬’은 전통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변용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특히 ‘기생’이라는 캐릭터는 양반과 천민의 사이에서 중간자,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인물을 형상화할 수 있게 한다. 이는 현대 대중문화의 캐릭터 창조와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 등에서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지극히 미국적인 것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을 공연하는 ‘비보이’의 활약은 광고와 드라마, 각종 문화 영역에서 새로운 자극제가 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뮤지컬 시장의 급성장과 더불어 새로운 형식의 비언어극, 예를 들어 ‘난타’와 ‘점프’가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문화 영역은 테크놀러지의 발달과 가장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인터넷 문화와 온라인 문화, 휴대폰, ‘디카’ 등의 문화 양상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들이다. 특히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따라 DMB 및 케이블방송의 다채널화, UCC(User Created Contents)의 일상화 등은 대중문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바꾸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2007년은 올해보다 더욱 급격한 문화 변동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