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 낭만이 사라진 지 까마득하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최근의 한 조사를 보면 많은 젊은이들은 여전히 사랑ㆍ우정ㆍ사회 같은 고전적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문학이 교양소설이다. 오늘은 한국 교양소설의 고전이라 할 만한 작품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80년대 초에 나온 이 소설은 70,80년대 한국 대학생들의 외적·내적 풍경을 여실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 대학사의 중요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영훈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형에게 얹혀살면서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지적 욕구가 강하여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다. 그 지력을 바탕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마침내 명문대에 들어간다. 그러나 1학년이 끝나기도 전에 깊은 회의에 빠진다. 생각했던 대학공부가 아니다.
2학년 때는 학과공부는 포기하고 문학 서클에 들어가 문학에 심취한다. 천 권의 책을 독파하고 소설이나 비평문도 거침없이 써낸다. 주위의 박수도 받고 시기도 받는다. 그러나 이것도 만족과 행복을 주지 못한다. 무엇이든 궁극적인 이유나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삶 자체가 공허하다.
영훈은 이제 술과 연애에 탐닉하며 그야말로 방탕의 길을 간다. 그렇게 심신이 궁핍과 허무로 피폐해졌을 무렵 두 명의 절친 중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대학을 떠나는 사태가 벌어진다. 영훈도 미련 없이 대학을 떠나 어느 산촌으로 간다. 극심한 노동으로 육체를 혹사하며 학교에서 얻지 못한 삶의 의미 하나를 얻을까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영훈은 독약을 품고 동해 바다로 간다. 바다에 몸을 던져 무의미한 삶을 끝내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가는 길에 설산의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고 파도에 휩쓸려 가는 갈매기를 보며 다시 생의 의지를 느낀다. 영훈은 독약과 함께 ‘감상과 허영’을 바다 속으로 던진다. 차창 밖으로 초봄의 꽃망울을 바라보며 서울로 돌아온다. 이로서 한 청춘의 치기어린, 그러나 나름대로 심각한 방황이 일단락된다.
짤막하게 줄거리를 소개했지만 『젊은 날의 초상』엔 예나 지금이나 젊은 지성인들이 맞닥뜨리는 중요한 문제들이 다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집요하게 추적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