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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방향을 잃은 혁신 기술

요즘 SNS에서는 얼굴을 합성하는 어플이 인기를 얻고 있다. 흔히 ‘딥페이크(deep fake)’로 불리는 이 기술은 딥러닝과 속임수를 뜻하는 페이크의 합성어로 영상 속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얼굴로 합성해주는 인공지능을 뜻한다. 딥페이크를 활용할 경우 일반적인 CG로 100일이 걸리는 작업을 단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딥페이크를 이용해 자신의 친구 혹은 유명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여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혁신 기술로 각광받던 딥페이크는 어느덧 가짜 뉴스와 보이스피싱, 성착취물 제작 등 범죄의 도구로 전락했다. 네덜란드 보안 업체(Deeptrace)가 2019년에 만든 보고서에 따르면, 딥페이크 사용 목적의 96%가 포르노그래피인 것으로 나타났고, 교육 및 기타목적은 고작 4%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딥페이크는 신종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 이 기술로 제작되는 포르노의 가장 큰 문제점은 타인의 얼굴을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어느 SNS에 ‘합성’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이른바 ‘지인 합성’으로 불리는 딥페이크를 만들어주는 계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SNS에 게시한 사진이 도용되어, 피해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단순 유포를 넘어 딥페이크를 직접 제작, 유통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취재에 따르면 이들 영상을 만들어 판매한 가해자들의 나이는 겨우 10대에 불과했다. 딥페이크 기술이 보편화됨에 따라 점차 가해자의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다.

 

딥페이크 범죄는 성범죄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종류의 범죄에도 활용되고 있다. 기존의 보이스피싱은 이제 타인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복제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유럽에서는 딥페이크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한국 또한 이러한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은 물론이다. 지난 9월 27일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에만 1천400건의 딥페이크 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층 정교해지고 첨단화된 기술은 범죄의 형태로 우리의 일상을 침범하고 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던 꿈의 기술은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했고 ‘딥페이크’라는 가치중립적인 용어는 어느덧 ‘범죄’의 동의어가 되었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적 허위영상물의 제작 및 배포를 금지하는 성폭력범죄처벌 개정안이 지난 6월부터 시행됐지만, 딥페이크 범죄는 계속해서 급증하고 있다. 통제되지 않는 기술이 부를 파국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혁신이 혁신으로 남을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규제가 하루 속히 마련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