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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불안하다…환자 절반이 자살 택한다는 ‘강박장애’란?

점진적으로 발생하지만 방치되는 경우 흔해… 초기 진단과 치료 중요

● 강박장애: 강박사고와 강박행동
배우 잭 니콜슨이 로맨스 소설 작가 멜빈 유달 역을 맡아 멋진 연기를 펼친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본 적이 있는가? 영화의 첫 장면부터 유달은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 사이먼의 애견이 귀찮고 불결하다며 쓰레기장에 버리고 집으로 들어와 도어락을 잠그면서 숫자를 센다. 반드시 열 번을 잠갔다 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식사는 집 근처 레스토랑 한 곳만을 고집한다. 레스토랑을 가는 도중에도 사람들과 부딪힐까 기겁하고, 바닥의 보도블록 가장자리 금을 밟지 않으려고 뒤뚱거리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레스토랑에서도 그는 항상 자신의 테이블과 자리를 고집하고, 서빙도 웨이트리스 캐롤에게만 받겠다고 말한다. 유달은 속된 말로 요즘 보기 드문 ‘진상’이지만, 정신의학적으로는 온갖 강박증을 가진 환자이다.


미국정신의학회 정신질환 진단분류기준 DSM-5에 따르면 강박장애는 ‘강박적인 사고와 행동 두 가지를 모두 동반하며, 현저한 고통과 사회적 혹은 직업적인 기능의 손상을 초래하는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다.
강박사고는 원치 않는 생각이나 충동 혹은 영상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떠올라 불안과 고통을 일으킨다. 환자는 이를 무시하거나 억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고 대부분 강박행동을 통해 불안이나 고통을 해소한다. 강박행동은 손 씻기, 줄 맞추기, 확인하기 등을 반복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데, 만약 이를 행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심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가장 흔한 강박사고는 ‘더럽다’ 혹은 ‘오염되었다’는 생각이고, 다음으로는 ‘내가 친구를 칼로 찌르진 않을까?’ 혹은 ’내가 도둑질을 하지 않을까?’ 등 자신의 공격적인 행동을 걱정하는 것이다. 또한 물건이 삐뚤어지거나 제자리에 있지 않는 것을 못 견디는 경우도 있으며, 성적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등이 있다. 강박행동으로는 가스 불이나 전기 스위치를 껐는지 집의 문단속을 제대로 했는지 의심하며 몇 번씩 반복해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흔하다. 다음으로는 완전할 때까지 반복해서 책의 같은 페이지를 읽거나, 글을 쓰고, 숫자를 세고, 정리정돈을 하는 행동이 있다.

 

● 강박장애의 여러 가지 양상
정신질환 진단분류기준 DSM-5에서 강박 관련 장애에 속하는 병으로는 신체이형장애, 저장장애, 발모장애, 피부벗기기장애 등이 있다. ‘신체이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는 추모공포증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소한 피부나 머리, 코 등의 모양에 집착하고 스스로 ‘못생겼다, 추하다, 괴물 같다’고 말하며 온종일 거울을 보거나 외출할 때는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짙은 화장을 한다. 또한 용품, 의복 등으로 가리고 대인관계를 피하기도한다. 심한 경우 반복해서 성형수술을 받는 등 성형중독증을 보이기도 하지만 수술 결과에 대해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저장장애(Hoarding disorder)’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어 온 집안이 물건으로 가득 차 고통을 초래하는 병이다. 저장장애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며, 각종 쓰레기를 집안 가득 모아 이웃에게 피해를 준다. 물건을 구입해서 쓰지 않고 모아두는 경우가 가장 흔하며 광고지나 남이 버린 물건을 모으거나, 때로는 훔치기도 하고, 동물들의 영양이나 위생, 건강 등을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많은 동물을 데리고 사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발모장애(Trichotillomania)’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지루하고 불편함을 느낄 때, 머리카락, 눈썹, 겨드랑이털, 얼굴의 잔털, 음모 등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뽑는 병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스스로 이런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노력하지만, 발모 직전 극도의 긴장감과 뽑고 난 후 느끼는 쾌감과 만족감으로 인해 결국 반복해서 털을 뽑는 행동을 보이는 병이다.


‘피부벗기기장애(Excoriation disorder)’는 얼굴이나 몸, 팔, 다리에 난 상처 딱지나 여드름 자국, 정상 피부 등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뜯고, 문지르고, 찌르고, 깨무는 등의 행동으로 피부병변을 만드는 장애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스스로 이런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노력하지만, 피부 벗기기 직전 극도의 긴장감과 뜯고 난 후 느끼는 쾌감과 만족감으로 인해 결국 반복해서 피부 벗기는 행동을 보이는 병이다.


발모장애나 피부벗기기장애는 DSM-5에서는 병적으로 불을 지르는 방화광, 갑자기 폭력적 행동을 보이는 간헐적 폭발 장애, 병적 도벽, 병적 도박 등의 질병과 함께 충동조절 장애에 속했으나, 현재는 강박 관련 장애로 분류되었다.

 

● 강박장애의 원인
프로이트는 소아의 발달 과정 중 항문기(만 2~3세)에 대소변 가리기 훈련을 너무 엄격히 하면 아이는 자라서 꼼꼼하고, 깔끔하고, 정리정돈, 인색함, 완고함 등을 특징으로 하는 강박적인 성격이 된다고 하였다. 반면, 부모가 대소변 가리기 훈련을 방관하거나 느슨하게 실시하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에 따라 충동적으로 감정 발산을 하고, 사회적인 규범이나 원칙 등을 어기는 성격이 된다고 하였다. 영화에서도 유달은 어릴 때 피아노를 치면서 자신이 실수할 때마다 아버지가 심하게 때렸다고 말하며, 가학적인 훈육이 강박장애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강박장애의 원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생물학적 요인이다. 강박장애 환자들에게 뇌의 전두엽과 기저핵 등의 해부학적인 기능 장애가 관찰되었다. 뇌 영상 검사를 통해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수용체의 변화가 관찰되었고, 세로토닌 관련 약물이 강박장애 환자의 치료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또한, 환자의 가족이나 친척 중에서 강박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수록 발병률이 높았고, 쌍둥이들이 일반인에 비해 발병률이 높아 유전적 특성도 입증되었다.

 

● 강박장애 치료 방법
강박장애 환자의 치료는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나 클로미프라민, 비정형항정신약물 등의 약물치료를 기본으로 하고 환자가 두려워하는 상황에 직접 노출시키거나, 오염을 두려워하는 환자에게 손 씻는 행동을 못하게 하는 반응방지 기법 등의 행동 치료적인 요법을 치료에 사용한다. 다른 치료법들로는 정신과 의사와 면담하는 정신치료와 전기충격요법, 정신외과적인 수술 등이 있다.


영화에서 유달은 캐롤과의 사랑을 위해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고 약물복용을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이웃의 개와 이웃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고, 강박적인 행동을 의식적으로 억제하려는 노력을 반복한 끝에 강박장애를 극복하고 사랑을 얻게 된다. 강박장애 환자들의 경과를 보면 증상들이 점진적으로 서서히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치료하지 않고 방치되는 경우가 흔하다. 치료를 받으면 증상은 대부분 조절되지만, 완치에 이르지 못하고 만성적인 경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강박장애 환자의 절반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25%의 환자가 자살 기도를 한다는 보고가 있다. 따라서 강박장애 증상을 보이면 조기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진단과 치료에 대해 상담하는 것이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