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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평론]유열의 음악앨범(2019)

-둘의 경험, 둘의 개연성

묘한 영화다. 개인적으로 반했다. 두 번째 본 후에야 영화의 결이 보였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 푹 잠겨보는 것, 그래서 영화에서 줄거리가 차지하는 몫은 길 안내에 불과하며 러닝타임 동안 실제로 ‘달려야’하는 건 관객 자신의 주체적 감각 동원력임을 일깨운다. 다 잊은 줄 알았으나 떨쳐지지 않는 기억, 아무리 돌이켜봐도 아쉬운 순간, 그것마저 소환해 ‘다시’ 살아보게 한다. 우연히 들려온 라디오 속의 사연과 음악이 마음을 잡아끌 때처럼.  

 

사랑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지 못 한다.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 심지어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기도 쉽지 않다. 사랑에 대해 어쩌면 가장 흔한 건 후회일지도 모른다. 못다 한 사랑을 다시 하게 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가정법이 의미 없음을 알면서도 수없이 되짚어보는 상상이다. 멜로나 로맨스는 바로 이 상상에 힘입은 장르일 터다. 왜 사랑은 지나간 후에야 그 전체의 윤곽이 비로소 보이는 것일까? 멜로가 ‘불가항력’에 의지해 연인들을 갈라놓고 엇갈리게 하는 전략을 쓰는 이유다. 가슴을 찢어놓는 자책으로부터 관객이나 독자를 구원하는 동시에 감정 몰입을 이끌기 위한 방편이다. 오로지 미워할 대상이 자기 자신뿐인 감옥에 갇히지 않으려면, 불가항력의 크기가 커야 한다. 흔히 이를 멜로의 ‘개연성(蓋然性)’이라 한다.

 

대다수의 멜로물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이토록 사랑함에도 불가항력적으로 헤어지게 됐음을 부각시킨다. 전쟁이 배경인 멜로물이 주기적으로 나오는 것은 전쟁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불가항력이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 외부 사건의 크기로 나와 너, 우리가 겪은 사랑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사랑이 ‘어떻게’의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기적과도 같이 시작된 사랑의 처음조차 “기적, 참 별 거 아니야. 그치?”하며 서로 웃는다. 일상의 기적은 수시로 찾아오며, 그게 지금임을 느낄 수 있는 게 행복이다.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 영화는 이 점에 충실하다. 어떻게 해야 사랑을 이어가고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도 정지우 감독과 주연배우들 말마따나 “삶이 그러하듯 사랑도 자존감의 문제”라는 데 있다. 대단히 섬세하고 현실적인 태도다. 

 

영화는 현우(정해인)의 눈에 비친 미수(김고은)의 한 시절을 그려내는 듯한데, 마지막은 현우가 아닌 미수의 활짝 웃는 얼굴에서 끝난다. 그대를 웃게 만드는 나, 내 마음에 드는 나. 그토록 달리고 달려 마침내 다다르고 싶었던 지점은 여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