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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루쉰, ‘루쉰 전집2: 외침, 방황’

창문도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만들어진 방이 있다고 하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고. 오래지 않아 다들 숨 막혀 죽겠지. 그러나 혼수상태니 죽음에 이르러도 별다른 고통은 느끼지 못할 것이네. 지금 자네가 소리를 질러 몇 사람이 깨어난다고 하세. 그럼 그들에게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야. 그래도 깨워야 하겠나?

강철로 된 방이 하나 있다. 방에선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머지않아 질식해 죽을 것이다. 그 안에는 내 친구가, 내 가족이 자고 있다. 깨워도 죽고, 깨우지 않아도 죽는다. 만약 나라면 어떻게 할까. 루쉰(魯迅, 1881-1936)의 소설 쓰기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쇠로 된 방과 그 안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사람들. 깨워도 죽을 것이고 깨우지 않아도 죽을 것이다. 20세기 초, 당대 중국과 중국인을 바라보는 루쉰의 시선은 이토록 어두웠다. 하지만 루쉰은 결국 깨우기로 결심한다. 누군가 일어나면 방을 부술 희망이 있지 않을까라는 친구의 대답이 계기가 된 것이다. 비록 그는 자신이 ‘왜’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에 대해 단지 이러한 선구자들의 열정에 대한 공감이었다고 소극적인 계기를 부여했지만, 「나는 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가」에서는 ‘인생을 위해서, 인생을 개량하기 위해서’라고 보다 분명하게 밝힌다.

『루쉰 전집2 : 외침, 방황』은 그의 첫 번째 소설집 『외침』과 두 번째 소설집 『방황』을 묶어 놓은 것으로, 바로 이러한 루쉰의 창작 동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한 줄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암담함 속에서도 빛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열정, 그런 암담한 삶을 ‘개량’하고 싶은 간절함. 『외침』에 수록된 작품들은 주로 농민들과 농촌을 제재로 삼고 있는데, 계몽주의적인 성격이 농후하다. 이에 비해 『방황』은 구태를 벗지 못한 가식적인 지식인이나 방황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작품집 제목이 암시하듯, 작품 속 고뇌하고 갈등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에는 아무리 ‘외쳐도’ 반향이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방황’하는 작가의 심정이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방황』의 첫머리에 서문 대신 인용한 「이소(離騷)」의 “길은 아득하여 멀고도 멀도다. 나는 장차 오르고 내리며 찾아 구하고자 한다”는 구절에서 나타나듯, 이 소설집은 그 ‘방황’이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한 ‘방황’임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에서 루쉰이 이야기하는 중국인과 중국인의 인생은 당대 중국과 중국인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앞에 놓여 있는 ‘인생’이 어쩌면 창문 하나 없이 꽉 막힌 쇠로 된 단단한 방일 수도 있다. 내가 그 안에 있을 수도 있고, 혹은 그 밖에 있을 수도 있다. 누가 와서 나에게 묻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가을, 루쉰과 함께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