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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만 되려하오’ 송덕봉

봄바람 좋은 풍경 예로부터 큰 볼거리
달 아래 거문고도 그 운치가 어떠하랴
술 마시면 근심 잊고 마음 확 트이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책벌레만 되려 하오
春風佳景古來觀(춘풍가경고래관)
月下彈琴亦一閑(월하탄금역일한)
酒又忘憂情浩浩(주우망우정호호)
君何偏癖簡編間(군하편벽간편간)


예의와 법도가 펄펄 살아 뛰던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도 진정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오순도순 살았던 부부들이 있었다. {미암일기(眉巖日記)}의 저자로 유명한 미암 유희춘(柳希春: 1513-1577)과 그의 아내 송덕봉(宋德峰: 1521-1578)이 바로 그런 경우다. 그들은 서로 시를 지어 보여주기도 하고, 보여준 시에다 맞장구질 치는 화답시를 지으며 놀기도 했다. 한번은 유희춘이 [지락음(至樂吟)]이라는 한시를 지어 아내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작품을 번역하면 대강 이렇다.

꽃이 흐드러져도 꼭 볼 것 까진 없고
음악이 좋다 해도 내게는 시들하네
좋은 술 예쁜 여자 모두 다 흥미 없고
진짜로 즐거운 것은 책 읽는 일 뿐이라네

이 시에 의하면 유희춘은 봄날의 몽환적인 꽃구경이나 아름다운 음악, 맛있는 술과 어여쁜 여자들에 대해서는 영 흥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는 인생의 지극한 즐거움이 오로지 책 읽는 데 있다고 생각한 ‘딸깍발이 선비님’이었을 게다.

남편이 보여준 이 시를 읽고, 아내 송덕봉은 답장하는 시를 지어 맞장구질 쳤다. 첫 머리에서 소개한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보다시피 아내는 ‘예쁜 여자에게도 영 흥미가 없다’고 말한 것만을 제외하고는, 남편의 견해에 대해서 낱낱이 반론을 펴고 있다. 다른 것들도 대단히 소중한 가치가 있는데, 오로지 책만 읽는 바보가 되어서야 되겠느냐는, 이유가 있는 문제 제기다. ‘인생의 스펙트럼을 좀 더 넓혀서 더 행복하게 살아보라’고 이렇게 넌지시 충고를 하고 있는 아내의 조언이 정말 따습다.

이 두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할까? 물론 사람마다 그 답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송덕봉의 손을, 그야말로 ‘번쩍!’ 들어주고 싶다. 우리가 늘상 읽고 있는 책도 책이 아닌 것은 물론 아니므로 당연히 열심히 읽어야 할 터.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야말로, 꽃피고 새우는 자연이야말로, 음악이야말로, 술이야말로, 연애야말로 우리가 밑줄을 굵게 그어가며 정말 자세히 읽어야 할 진정한 의미의 책이 아니던가.




[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지금, 굳이 ‘삼국지’를 읽는 이유 영화, 책, 예술작품 가운데 하나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괜히 실제 내 삶보다 더 있어 보이는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어본 적 없지만 의미 있어 보이는 철학책을 고를지, 그럴듯한 예술영화를 추천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오래전 읽었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렸다.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 추천하기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에 고른 책은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다. 삼국지는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추천하기 조심스러워지는 책이기도 하다. ‘굳이 지금 삼국지?’ 라는 반응도 있을 테고, 이미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느낌이 꽤 다르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선택, 타이밍과 판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다 보면 어떤 날은 조조가 가장 쿨해 보이고, 어떤 날은 유비의 끝까지 사람을 믿는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삼국지는 책 ‘읽는 재미’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고전이라고 하면 시작하기 전에 부담부터 느끼기 쉬운데, 삼국지는 일단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