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盲人)가 봉사(奉仕)하는 이색박물관 - 덕포진 교육박물관
김포의 끝자락. 덕포진에 가면 자그마한 박물관이 있다. 다름 아닌 이 지역 지명을 딴 덕포진 교육박물관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굵은 손마디에 거친 손톱, 일상의 고단함이 묻어있는 검은 피부의 촌로가 잔주름만큼이나 얼굴에 친숙한 미소를 머금고 손님을 맞는다. 이 박물관의 설립자이자 관장인 김동선씨다.
박물관에는 50년대 책걸상, 책보, 교과서, 풍금을 포함한 악기류, 교육자료와 민속품, 농기구 및 생활용품 등 5천여 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근현대 교육사 및 생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의 타임캡슐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박물관의 핵심은 1층에 위치한 인성교육관이다. 50년대 학교 교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이곳은 개관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3학년 2반 교실이다. 이 교실의 주인은 김동선 관장과 공동관장으로 되어 있는 김 관장의 부인 이인숙 여사다.
이 관장은 박물관의 공동설립자 겸 관장이며 3학년 2반의 영원한 담임선생님이기도 하다. 교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벌써 10년째 이 반의 담임을 맡고 있는 이인숙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이내 그녀는 이미 익숙한 책상 사이를 걸어 교단으로 올라 그곳에 놓인 키 작은 풍금을 마주하고 앉는다. 이윽고 “000어린이, XXX어린이” 등 능숙하게 출석을 부른다. 그러나 그녀의 초점 없는 시선은 앉아 있는 학생의 대답이 끝난 후에야 그곳을 향한다.
이인숙 선생님은 다름 아닌,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명문대학 졸업 후 20여 년간 교편을 잡고 있던 90년대 초 이 관장에게 이름 모를 병마가 엄습해왔고 그 종단은 시력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부부교사로 교직이 천직임을 알고 교단에 서오던 두 사람에게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하고 생각해낸 방편이 급기야 영원한 교직에 머물 수 있는 교육박물관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비로소 두 사람은 정년도 정근도 승진도 없는 영원한 평교사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말한다. “덕포진 교육박물관은 봉사(소경)가 봉사(奉仕)하는 곳이라고…” 이러한 타고난 성품을 지닌 이 관장은 그녀가 교직을 떠날 때 담임으로 있던 3학년 2반 교실에서 오늘도 손익은 풍금을 치며 그 옛날 초등학교 3학년에서 있었을 법한 수업을 재현한다. 그래서 박물관에는 유난히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중장년층 관람객이 많다. 또한 일본과 중국 손님들도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곳에 가면 그녀의 말대로 봉사가 봉사하고 있는 모습을 가슴 가득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색박물관의 등장과 배경
그리고 주요박물관
이렇듯 우리주변에는 관심을 갖고 보면 이색박물관이 많다. 올 6월말 현재 우리나라에는 4백38개 박물관이 존재하고 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그 증가폭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에서는 박물관을 문화·예술 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역사·고고·인류·민속·예술·동물 ·식물·광물·과학·기술·산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하는 시설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자료관·사료관·유물관·전시장·전시관·향토관·교육관·문서관·기념관·보존소·민족관·민속촌·문화관·예술관·문화의집·야외전시공원 및 이와 유사한 명칭과 기능을 갖고 있는 문화시설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문화관광부장관이 인정하는 시설에 대하여도 적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의 시행령을 보면 ‘박물관사업을 수행할 목적으로 설치·운영되는 동물원·식물원 및 수족관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렇듯 박물관은 넓고도 광범위한 개념을 포용하고 있다. 법에 근거하여 최근 박물관은 매우 다채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청자와 백자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은 유물의 희소성이나 식상함으로 인해 더 생겨날 가망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보다 색깔이 분명한 박물관의 탄생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되면서 지속적인 개관이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박물관의 등장은 몇 가지 원인이 있어 보이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박물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위 법조항에서 언급했듯이 기능과 목적이 분명하면 그 어떠한 유물로도 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난지도에 쓰레기박물관이 생기지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둘째, 국민들의 문화욕구증대를 들 수 있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주5일제 근무, 노는 토요일 확산 등으로 생긴 유휴시간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문화욕구의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박물관은 이러한 기대를 잘 충족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공간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셋째, 문화가치의 상승에 따른 기대치의 증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가 TV와 컴퓨터가 되고 고성능 스테레오 컴퍼넌트가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즉, 일상에서 손쉽게 고급 문화의 흡입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일반대중의 문화감식안은 그만큼 상승되고 있으며 더 수준 높은 문화 인지능력을 획득하고자 한다. 박물관은 유물이라는 하드웨어에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고급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가치인식을 상승케 하는 완벽한 공간이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활의 여유에서 오는 다양한 컬렉터들의 등장도 작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박물관은 늘 진화하고 있으며, 그 진화의 속도만큼 우리문화의 가치도 향상될 것은 자명하다. 그 중심에 다양한 이색박물관의 역할이 숨어 있음을 우리는 차츰 인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