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금 상반기 10조원 급감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홍정규 김승욱 기자 = 은행권의 자금에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뭉칫돈을 받아도 굴릴 곳을 찾지 못하는 은행들이 실질 이자율이 낮은 정기적금으로 자금을 유도하는 `꼼수'를 부리면서 정기예금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하나, 신한, 우리, 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449조5천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말 440조6천억원으로 8조9천억원 가량 감소했다.
다른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합치면 은행권의 전체 정기예금은 올해 상반기에 10조원 이상 급감한 셈이다.
반면, 지난해 말 33조6천억원이었던 정기적금 잔액은 올해 상반기 말 37조9천억원으로 4조3천억원 가량 급증했다.
이는 지난해와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통상 정기예금의 증가액이 정기적금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지난해 상반기에도 정기적금은 14조원 가까이 증가한 반면 정기적금은 2조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예금에서 적금으로의 자금 대이동이 일어난 데는 은행들의 대폭적인 정기예금 이율 인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1년까지만 해도 정기예금의 이율은 연 3.96%로 정기적금 이율(연 3.90%)보다 높았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정기예금의 이율이 연 3.48%로 확 떨어진 반면 정기적금의 이율은 연 3.99%로 되레 높아졌다.
올해 5월에는 정기예금(연 3.11%)과 정기적금(연 3.89%)의 이율 차이가 1%포인트에 육박할 정도로 정기예금의 매력도가 떨어졌다. 시중자금은 당연히 정기적금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은행들이 정기예금을 거부하는 것은 뭉칫돈을 받아도 운용할 곳이 없을 정도로 대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가계의 경우 신규 주택대출을 받기는 커녕 기존 빚을 줄이려 하고 있고 기업들도 투자를 꺼리고 있어 대출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면서 "은행으로서는 돈 굴릴 곳을 찾기 힘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율이 더 높은 정기적금으로 자금이 몰려들면 은행들의 부담은 더 커지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로 정기적금의 높은 중도해지율 때문이다.
은행별로 다르지만 정기적금 가입자가 만기까지 적금을 유지하는 비율은 통상 70%에 미치지 못한다. A시중은행의 경우 정기적금의 만기 유지율이 고작 40%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객이 정기적금을 중도에 해지하면 이율을 연 0.1%밖에 받을 수 없다. 은행으로서는 정기적금 고객의 30~60%에 대해 이자를 거의 주지 않는 셈이기 때문에 이자 부담이 정기예금보다 훨씬 낮다고 할 수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기예금은 여유자금을 이미 모은 사람들이 주로 가입하기 때문에 중도해지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정기적금에 높은 이율을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저이율을 누리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