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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걷고 있는 우리

한글은 문화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올해는 한글이 태어난지 5백 60돌이 되는 해입니다. 문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몇 돌이 되고 얼마나 오래되었는가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한글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어가 경쟁력이라고 하여 영어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기 시작한 지 벌써 여러 해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중국어와 한자 배우기 열풍까지 불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다시금 한글날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다른 점이라면 한글날이 국경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991년 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이 국경일에서 사라졌습니다. 문화를 경제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아 생긴 폐해입니다. 많은 나라가 자신들의 문화를 경제의 첨병으로 삼아 세계를 공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우리만 반대로 걷고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일본의 경우 사무라이의 나라라고 선전하고 있고 이것이 서양 세계에 받아들여져 많은 관광객이 일본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국적인 풍경에 이끌려서 말입니다. 영화, 만화를 통한 나라의 문화를 수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토익, 토플 등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하고 외국에 어학연수를 갔다 오는 것은 필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오랜 기간 외국문물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걸러짐 없이 문화가 바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글 자체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언어보다도 쉬워 문맹률도 낮습니다. 그래서 유네스코에서도 현재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각 나라의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또한 한글은 정보화가 쉽기 때문에 인터넷, 손전화 등 한국의 정보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하였습니다. 이렇듯 한글은 문화의 경쟁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글문화연대에서는 늘 문화의 중요성에 대하여 논의해왔습니다. 한글은 우리의 문화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로마자는 디자인으로 활용되어 많은 곳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서울 시내를 다니는 버스에도 활용될 뻔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입니다. 외국어를 배우지 말자거나 배척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도 우리의 문화인 한글을 배우고 널리 이용하자는 말입니다. 지난해 한글문화연대에서는 한글무늬자료집을 내놓았습니다. 로마자처럼 한글도 충분히 아름답고 사용할 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굳이 영어로 쓰지 않아도 아름다운 우리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한글 디자인으로 만든 한글티셔츠 또한 거리에 입고 다녀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문화유산인 한글을 죽이는 곳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의 버스 개편입니다. 서울시는 2003년 3월부터 자치구 및 시내버스업계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2004년 3월 25일 간선노선 개편안을 확정했습니다. 그 당시 서울시는 시내버스에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하면서 원색 바탕에 옆면에는 영어 알파벳으로 ‘R(red·광역)’, ‘B(blue·간선)’, ‘G(green·지선)’, ‘Y(yellow·순환)’ 등 노선 종류를 알려주는 영문 알파벳 도안을 붙였습니다. 7월 버스운행 체계 개편을 앞두고 노선별 버스를 쉽게 구별하도록 하기 위해 디자인을 새로 바꿨다는 것이 서울시청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간선·지선·광역급행·지역순환 등 네 종류로 분류되는 버스들이 각각 청색·녹색 ·빨강·노랑색으로 구별되는 새 옷을 입었는데 굳이 그 색깔의 영문 첫 글자인 ‘R, B, G, Y’를 넣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분류의 내용을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디자인일 뿐인데 굳이 영문글자를 써넣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글문화연대에서는 2004년 4월 1일 서울시에 ‘서울특별시 새로운 버스 도안을 시정해달라’는 요지의 공문을 보냈으며 2004년 7월 6일 청와대, 서울시 의회, 국회 등에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시내버스 영문 도안을 없애기 위한 헌법 소송 준비 작업을 시작하여 2004년 9월 22일에 헌법소송 소송장을 접수하였습니다. 그리고 2004년 10월 28일 서울 시내버스 영문 도안을 한글로 대체 하였습니다.

비단 서울시의 경우뿐만 아니라 정부나 언론, 기업들이 세계화 시대라고 하여 우리말을 홀대하고 외국어 배우기만 강조하다보니 우리말은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문화 정책, 언어 정책에서 우리 말글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할 정부, 언론, 방송 등이 영어사대주의에 빠져 영어로 쓰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 아래 만들어진 법이나 정책이 과연 얼마나 우리 말글을 보호하는 데 힘을 보태줄까요? 세계화 시대에 발 맞춰나가겠다는 데 무슨 한글 사랑이냐라는 식의 태도와 이미 정해진 사항이라 바꿀 수 없다는 독단적인 행태 등이 우리 말글의 설 자리를 잃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해 사이에 영어로 이름 짓고 영어를 섞어 쓰는 경향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거리는 온통 영문 간판으로 채워지고 한글은 버림받고 힘없는 존재가 되어 갑니다. 그리하여 우리말과 한글을 갈고 닦는 일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하여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한글은 우리가 간직한 고유의 문화유산이며 정신적인 가치입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늘 실천하며 우리 말글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오는 10월 9일은 한글날이 14년 만에 국경일이 된 날입니다. 미약하지만 문화 사회로 나가기 위한 발걸음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세계에서 인정해주는 우리 한글, 우리도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