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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도안 선정에 대하여

이제는 화폐가 가진 예술적·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볼 때


화폐는 한 국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역사적 사료이자 최고의 예술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로 화폐 속에 담기는 도안 역시 신중하게 선정되어야 할 것이다. 화폐는 그 시대의 단순한 유통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훗날의 역사적 사료로서의 구실을 어떠한 고미술품보다도 뛰어나게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화폐 속에 시대적 상황이 그만큼 많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화폐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너무도 단순했다. 세종대왕, 이이, 이황, 이순신 이것이 우리세대에서 보던 화폐속의 인물이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대통령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노인상(일본의 자료에는 김윤식이라 했었으나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는 수노인상으로 정리되고 있음)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시절에는 일본은행장의 초상이 들어간 것과 일본의 대흑천상이 들어간 것도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은 암울했던 우리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모든 지폐에 세종대왕, 이이, 이황 이 세분의 영정만을 고집한데는 어떠한 이유가 있었을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만원권은 7종이나 된다.(오천원권 5종, 천원권 3종) 6번의 도안변경이 있었으나 인물은 변한 것이 없다. 1차 만원권은 은서(투문)부분에 불교를 상징하는 도안이 있어 기독교계의 반발로 2차 만원권이 나오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것이 설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두 장의 화폐를 놓고 보면 이 설이 유력하다는 것을 믿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우리나라의 역사는 불교적 형태의 문화유산이 많은 것이 사실이며 그 바탕 속에 그러한 도안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민주사회의 여러 의견을 하나로 합할 수는 없을 것이며 개인주의보다는 국가를 생각하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큰 눈이 필요하다 할 수 있겠다. 이후 계속되는 만원권 화폐에 사용된 도안이 바뀌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단순함에 있었으리라.

변화에 대한 두려움(?), 안일한(?) 생각, 진보적이고 발전적이지 못한 것이 변화하지 못한 이유는 아닐까?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은 위에 언급한 세분 만이라서 일까? 한번 정해진 것을 바꾸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오늘의 화폐도안을 일률적으로 줄을 세우게 된 것은 아닐까? 좀 더 과감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가져야할 것이다.

이제 고액의 화폐를 발행함에 따라 화폐에 사용될 인물선정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과거를 알리는 것인가 아니면 현재를 알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우리의 화폐를 볼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다. 화폐는 대한민국을 상징하고 대한민국을 홍보할 수 있는 최고의 홍보매체임을 생각하여야한다. 그러기에 화폐를 발행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도안의 특성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화폐 중에 최고의 홍보화폐라면 1966년에 발행된 오백원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이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시절인 1971년 9월 H그룹의 J회장은 조선소 건립을 위해 철저한 준비 자료를 가지고, 영국 버클레이 은행으로부터 차관을 얻기 위해 런던으로 날아가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 설득하였다.

그러나 조선소 설립 경험도 없고, 선주도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영국은행의 대답은 간단히 “NO”였다. 돌아서는 길에 우연히 주머니속의 500원권(거북선이 도안되어 있음, 1966년 8월 16일 발행개시)을 본 그 회장은 롱바톰 회장을 다시 만나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전인 1천 5백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소. 단지 쇄국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었을 뿐, 그 잠재력은 그대로 갖고 있소.”라는 재치 있는 임기응변으로 롱바톰 회장을 감동시켜 조선소 설립자금을 확보하고 선박수주를 한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화폐 속에 담긴 거북선 도안 하나가 철저히 준비한 사업계획서 보다도 큰 힘을 발휘했으니 지금의 조선 산업에 초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화폐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 하나가 대단히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화폐는 단순히 유통력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하므로 보다 신중한 결정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적인 유명인사보다는 세계에 한국을 알린 유명한 인물이면 어떨까? 인물이 아니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예술품은? 그러면서도 후손들에게 화폐만이 지니고 있는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남길 수 있는 그러한 인물 또는 예술품이 선정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