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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쿼터의 역사와 의미

영화는 일반상품처럼 비교우위 관점에서 판단할 수 없는 문화상품

스타들의 1인 시위, 연일 계속되는 농성 등 스크린쿼터 관련 보도는 연일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도는 현상보도에 그칠뿐 스크린쿼터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과연 스크린쿼터는 무엇일까?


스크린쿼터의 사전적 의미만 본다면, 한국에서 1년동안 상영되는 영화의 40%(1백46일)를 국산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영화정책이다. 그리고 영화인들이 지금 거리로 나가 시위를 하는 것은 미국이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의 전제조건으로 현재의 절반인 73일로 축소를 요구했고, 한국정부는 이러한 부당한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인들은 왜 그토록 스크린쿼터축소에 반발하고 있는가? 한국영화는 이미 나름대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스크린쿼터를 20% 정도 줄여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사고파는 일반상품이 아니라 문화상품이다. 문화상품은 일반상품과 같이 무역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문화이기에 그 자체만의 고유한 역할들을 수행한다.


역사와 생활, 사고방식과 정체성을 반영하고 주도하는 매체의 공익적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공공재의 성격을 가진 문화상품은 일반상품처럼 비교우위의 관점에서만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영상물이 비교우위를 가졌기 때문에 경쟁력을 지니지 못한 다른 국가들은 모두 이 분야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다. 미국이 영상산업에 그토록 공을 들이고, 집착하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 때문만은 아니다.


한 편의 영화는 단순히 영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의 생활습관, 미국의 이미지 등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아무런 거부감없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1980년 팍스 아메리카의 기치아래 그토록 많은 미국 영웅들이 전 세계를 더 나아가 우주를 지키지 않았던가. 그렇게 우리는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이미지를 아무런 저항없이 우리 생활속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러한 영향력을 간파한 미국은 일찍이 문화상품에 남다른 공을 들여왔다.


자본과 인력등의 여건과 그 필요성을 인식한 미국은 문화상품을 그 어느곳보다 빨리 산업화시켰고, 그만큼 다른나라의 문화상품보다 비교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 거대한 공룡은 진작부터 미국시장만이 아니라 전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고 유통된다. 그리고 유통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문화상품을 일반상품과 동일선상에 놓고자 한다.


이렇듯 문화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미국과 그 이외의 국가들 간의 총성없는 문화전쟁은 지금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유럽은 1차 세계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세계영화산업의 메카로서 위치했으나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기존의 토대들을 모두 휩쓸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전후 뒤처리 문제로 당장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영화에 관심을 쏟을만한 여력이 없었다. 이 시기동안 전쟁 이전부터 이미 수직합병, 헐리우드 건설, 장르영화를 구축하며 산업화의 길을 가던 미국은 세계대전에서 방관자였던 점을 활용해 세계영화산업에서 명실 공히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이에 20년대 이후 유럽은 미국영화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심각한 문화적 위협을 느껴 자국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미국영화산업계는 미국정부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함으로써, 무역협상에 있어 스크린쿼터라는 흐름을 방해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하지만 1947년 GATT 즉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이 체결되는데, 1920년대 대공황으로 인한 자본주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국가간 관세장벽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협정에서 문화는 주요 이슈가 아니었고 협정에서 유일한 문화적 항목은 영화에 대한 스크린쿼터를 인정한 4조뿐이다. 제 4조에서는 스크린쿼터가 GATT아래에서 인정될 만한 것이란 사실을 명시했다.


이것으로 문화와 무역은 타협의 실마리를 찾은 듯했으나 미국은 끊임없이 다른 국가들의 TV와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 TV 프로그램 규제 등 문화적인 예외조항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이러한 논쟁은 1995년 1월 WTO가 출범하면서 논쟁은 더욱 심화되었다. WTO는 서비스(GATS)는 물론이고 지적재산권등을 포괄하여 기존의 관세 장벽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양상은 MAI협상에서 폭발되었다. 1995년 OECD는 회원국들 간의 다자간협상(MAI)을 주도했지만, 문화적 예외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해 깨지게 되었다. 이후 미국은 다자간협상을 통해 무역협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양자간협상(BIT, FTA등)을 통해 각개격파하고 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국가들은 2005년 10월 ‘문화다양성협약’을 체결했다. ‘문화다양성협약’이란 각국의 현실에 맞는 다양한 문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스크린쿼터가 그 중요한 본보기인 것이다.


이미 전세계영화시장의 85%, 자국시장의 98%, 방송프로그램의 70%, 5대 음반메이저가 80%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미래산업의 동력이 될 문화시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것이다.


스크린쿼터는 이러한 미국 독점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판이다. 스크린쿼터 철폐가 그들이 원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이후 그들은 한국의 방송, 음반 등 문화산업 시장의 완전 개방을 요구할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말과 글을 표현해 우리의 생각과 역사를 표현해낼 문화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에 미국의 문화상품으로 채워진 삶을 살길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