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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열정과 노동을 착취하는 무급인턴

인턴 채용 사유 및 근로조건 기준과 노동권 보호 위한 법・제도 필요

“인턴십 프로그램은 교육, 역량강화 프로그램이므로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인턴은 노동자가 아니다.” 최근 무급인턴이 청년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새로운 ‘노동착취’의 문제로 비난받기 시작하자, 인턴십을 운영하는 기업이나 기관들이 늘어놓는 소명의 항변이다.

유사 제도라고 할 수 있는 현장실습이나 수습제도와 마찬가지로 인턴 또한 어디까지가 교육이고, 어디까지가 노동인지 그 불분명한 경계가 언제나 문제다. 인턴은 교육생인가, 노동자인가. 교육은 교육답게, 노동은 노동답게 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 인턴은 충분히 무급일 수 있다. 단 엄격한 기준에 의해서만 그렇다. 해외의 사례다.

미국은 법으로 인턴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 노동부는 판례에 근거하여 무급인턴의 6가지 기준(Six Test for Unpaid Interns)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 주요한 사항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턴십은 교육훈련으로 제공되는 훈련과 유사한 것이어야 하고, 그 경험이 인턴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인턴의 업무는 정규 직원의 업무를 대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며, 사용자는 인턴의 활동으로 인해 어떠한 이득도 얻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인턴의 활동으로 인해 그 일에 종종 지장이 초래될 수도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을 때 인턴은 노동자가 아니며, 무급이 가능하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무급인턴이라는 ‘공짜노동’이 어떠한 사회적 기준과 제도적 보호 장치 없이 무분별하게 확대되고 있는 형편이다. 필자의 시각에서 보면, 기업들이 ‘그 달콤한 맛을 알아버렸다’고 느껴질 정도다.

지난 10월, 주 몬트리올 영사관은 문화 및 홍보업무 지원, 각종 자료 수집 및 보고서 작성, 통·번역 분야에 인턴 직원을 채용하겠다는 공고를 냈다. 모집인원은 1명이었으며, 지원 자격에 영어 및 불어를 우수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우대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물론, 급여는 없었다. 영사관은 사회경험을 넓히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턴십 기회를 ‘제공’한다는 표현을 선심 쓰듯 덧붙였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이번에는 민간정책연구기관인 동아시아연구원이 문제가 됐다. 연구원의 각종 행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대외협력팀과 여론조사 업무를 맡고 있는 여론분석연구팀에서 인턴을 선발했다. 이번에도 영어에 능통한 사람과 PC에 숙련한 사람을 우대했다. 인턴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이력서, 자기소개서, 인턴십 지원서를 제출해야 하며, 선발절차는 서류전형과 인터뷰전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경쟁 과정을 뚫고 합격한 사람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제공된다. 그러나 역시 급여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을 달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항답게 눈에 띄게 굵은 글꼴로 표기되었다. 연구원은 2004년부터 운영하여 3백 명 이상의 청년들이 거쳐 간 이 인턴십 프로그램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자세한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공고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만으로 보더라도 위의 기관들이 채용한 인턴들이 정규 직원의 일을 대체하는 성격을 가진 상시적인 실질 업무에 배치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것을 ‘노동착취’ 외에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그들이 우대한다고 밝혔듯 외국어나 업무 능력이 훌륭한 사람이 필요하면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여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맞다. 청년들이 호구인가. 인턴이라는 보기 좋은 형식으로 청년들의 노동을 값싸게 혹은 공짜로 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동아시아연구원의 대외협력팀은 지난 8월에도 ‘미술·디자인 전공자’를 인턴으로 선발한 적이 있다. 동아시아의 정치·경제 이슈를 다루는 연구원의 인턴십에 도대체 미술 전공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디자인 업무에 배치할 임시 인력을 인턴으로 선발하여 교육과 경력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인건비를 절감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 이것은 현재 적극적으로 인턴을 채용하고 있는 수많은 기업과 기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 법률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있고 상급 직원으로부터 지시와 명령을 받으며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한다면 인턴도 근로기준법 상의 노동자로 볼 수 있다. 인턴을 채용한 기업과 인턴 참가자 사이에는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며, 이러한 경우 아무리 그럴 듯한 핑계를 대도 ‘무급’ 규정은 효력이 없다. 지불되지 않은 급여는 모두 ‘체불임금’이다. 무급인턴은 법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한국사회가 저출산·고령화의 위험에 직면하기 시작했으며, 청년인구의 감소로 생산가능인구가 계속 줄어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청년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보장하고, 건강한 노동을 통해 숙련과 경력을 쌓도록 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중요한 과제다. 청년이 노동시장에 원활하게 진입하여 괜찮은 일자리를 얻고 임금소득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사회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물질적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들은 청년의 성장을 돕기는커녕, 청년이 처해있는 절박함을 악용하여 그들의 열정과 노동을 계속 착취하고 있다. 법·제도의 빈틈에서 이윤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시장경제의 폭력적 원리가 제대로 규제되지 못하면서 청년들의 ‘이름 없는 노동’은 계속 상처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이 원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실업자들이 세상에 쏟아지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최장 2년짜리 계약직 일자리다. 2000년대 이후로 계속 악화되어 온 청년실업 문제는 청년들로 하여금 더욱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게 하고 있다. 취업까지의 통로가 좁아지면서, 노동시장의 외곽에 인턴, 현장실습, 수습, 교육생 등 정체가 불분명한 제도들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력서에 넣은 한 줄의 경력이 시급한 청년들은 한정된 인턴십을 두고서도 경쟁한다. 청년들은 그렇게 을 중의 을이 되어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한 마디 문제제기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무급인턴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 빨리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여 인턴의 채용사유와 근로조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노동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인턴 제도를 악용하는 기업들을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가 돌려줄 대답이 무급인턴과 같은 ‘신(新)노동착취’여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