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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4호 사설] 헌정 붕괴, 대학의 책임은 무엇인가

지금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국가수반인 대통령에 의한 헌정 파괴이라는 미증유의 현실 때문이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관료와 정치권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국무총리도 비서실장도 여당 간부도 다 몰랐다고 했다. 거짓말이거나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이다. 알고도 모른 척 했다면 직무유기다. 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게 그들의 직분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권력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못 본 척했다. 권력에 빌붙어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작은 이익을 위해 그들은 꼭 해야 할 말을 삼켰다. 옛사람들은 상소 올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알면서도 거짓말하는 일은 더욱 나쁘다. 중국 진나라 시절 환관 조고 앞에서 대신들이 사슴을 말이라고 대답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떠올리게 된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라는 환관의 위세에 눌려 할 말을 못하고 거짓말을 일삼은 관료, 정치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양심에 가책을 안 받는 사람들은 금수와 다름없다. 금수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교육을 받는다. 누구보다 더 많이 교육 받은 사람들이 이럴진대 교육 무용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살펴보면 금세 들통 날 거짓말을 늘어놓고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몰염치의 풍조는 우리 사회가 깊이 병들었다는 하나의 방증이다.

1980년대 우리 사회는 자유, 민주, 민족, 정의와 같은 절대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쉽사리 그런 가치를 내세우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심각한 내용을 말하면 금세 ‘진지충’이라는 비아냥이 날아든다.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사는 오직 먹고 즐기는 데 집중되어 있는 듯하다. 방송 채널마다 넘쳐나는 ‘먹방 프로그램’이나 ‘건강 프로그램’, 연예가 가십거리 같은 소모적인 예능 프로그램이 판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약자에 대한 배려, 국가의 안위, 사회적 규범에 대한 가치는 사라지고 오로지 개인적 쾌락 추구에 몰두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몰염치 풍조의 근원이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이러한 풍조는 대학사회에도 침윤되어 있다. 지성을 탐구하는 대학이 취업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됐고, 학생들도 사람됨의 가치보다 세속적인 가치를 좇는 데 급급하다. 경제나 기술교육이 인성함양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정부예산에 목덜미를 잡힌 대학의 입장에서 교육방향이 현실적 잣대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학이 도덕적 가치를 가르치지 못한다면 가정에서라도 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핵가족이 된 이후 가정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부모를 대신하는 게 티브이 프로그램이다. 오죽하면 요즘 세대의 아버지는 모니터라는 말이 있겠는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영상매체에 노출된 세대에게 윤리적 삶의 의미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에서 벌어진 백만 명 시민혁명에서 우리는 희망의 단초를 발견한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수능을 눈앞에 둔 수험생이나 노인층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신분을 초월하여 자유와 민주, 정의의 가치를 소리 높여 외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이 성숙한 시민들 앞에서 정치권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은 심한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 이를 계기로 우리 대학들도 이 사회가 더 이상 썩지 않도록 방청제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이것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며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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