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논란의 팁 문화, 역사와 경제적 효과

한국에서 팁이 보편화된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모빌리티 플랫폼 카카오T가 최근 택시 기사에게 팁을 주는 시범 서비스를 도입해서 화제다. 기사님에게 별점 5점을 준 경우 팁 지급 창이 뜨는데 승객은 1,000원, 1,500원, 2,000원 중 팁을 지불할 수 있게 한다. 또 몇몇 카페와 식당에서 미국처럼 팁을 요구하거나 팁 박스를 카운터에 설치하면서 SNS에서 논란이다. 업주의 관점에서 보면 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접객원이나 기사에게 더 많은 수익을 제공함으로써 서비스 제고의 동기 유발을 의도했을 수 있다. 서비스가 좋은 기사들이나 식당 접객원들이 본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고객에게 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도 있다.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직원을 소비자가 직접 평가하는 제도의 연장선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서양의 팁 문화는 쉽게 도입할 만큼 경제적 파장이 단순하지도 않고 역사적 배경도 슬프고 아프다.

 

소비자는 팁을 일종의 감사 표시이며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가격이 아니며 마음과 감정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미국과 같은 곳에서 팁 문화는 거의 강제적이라는 점에서 팁에 대한 반감이 거세다. 미국 음식점이나 카페와 같은 서비스 매장에서 직접 접객 서비스를 받는 경우 소비자가 원하지 않아도 팁을 내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최근 태블릿PC 등을 이용한 디지털 지급 결제 과정에서 버젓이 18%, 20%, 22%, 25%까지 팁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심지어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포장(to go) 전문 매장에서도 팁이 요구되고 있어 ‘팁 인플레이션’이란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팁이 상승하고 강제적으로 확산하면서 소비자가격표시는 전혀 변함이 없어도 소비자가 실제로 지급해야 하는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미국에서 팁이 왜 강제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까? 팁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과 경제 제도의 발전이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팁이 언제 발생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략 중세 봉건영주시대 영국 16C경으로 보고 있다. 신분제 시대 영국 귀족이 다른 귀족의 저택에 방문했을 때 친절하게 서비스가 좋았던 다른 귀족의 하인에게 돈을 주곤 했는데 이것이 팁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영국의 티(tea)하우스나 커피하우스와 같은 상업시설에 확산하였는데 ‘빠른 서비스 보장’(TIP :To Insure Promptitude)을 해주는 서비스 대가로 별도의 돈을 병이나 상자에 넣으면서 보편적인 귀족문화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유럽의 팁 문화에는 귀족과 하인이라는 신분제가 내재되어 있어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유럽에서는 팁 문화에 대해 ‘비민주적이라’는 반감이 나타났고 현재 팁에 대한 강제성은 없어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팁 폐지 법안’이 제기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계층이 하인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이다. 하인 계층은 팁을 받지 못하면 당장 소득이 대폭 감소하기 때문에 격렬하게 반대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유럽의 국가마다 팁 문화는 없어진 곳에서부터 보편적인 곳까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공통의 원칙은 ‘팁의 자발성’이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팁 문화가 보편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부자들이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유럽 귀족의 팁 문화를 모방하면서 미국으로 수입하였다. 또 미국의 남북전쟁 후 해방된 흑인에게 임금을 주는 일자리는 시장에 별로 없었기 때문에 고정된 임금이 아닌 불규칙한 팁을 노동의 대가로 지불한 일이 흔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미국의 팁 문화에 ‘인종’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미국의 최저임금제도도 팁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1938년 미국 최저임금법에서 팁을 받는 근로자(이하 ‘팁 근로자’)는 최저임금을 정하지 않았고 1966년에 일반 근로자 최저 임금의 50%를 팁 근로자의 최저임금으로 정하였으나 최종적으로 1996년 제정된 최저임금인상법에서 팁 근로자의 연방최저임금을 시간당 $ 2.13(일반 연방최저임금은 $7.25)으로 고정하였다.

 

2014년 현재 미국 51개 주 중 8개를 제외한 43개 주에서 팁 크레딧(tip credit)이라고 해서 팁 받는 노동자에게 고용주가 주는 기본급을 법정최저임금 미만으로 정해도 무방하다. 팁과 기본급을 합해서 법정최저임금 이상이면 된다는 뜻이다. 물론 최저임금은 미국 주마다 달리 정해지고 팁 근로자의 최저임금도 주마다. 이렇듯 미국 접객업소의 팁은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보전하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미국의 경우 팁 근로자의 최저임금 시스템 자체가 애매모호하며 고용주의 최저임금 지급 의무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팁이 필요하다. 특히 2020년부터 약 2년간 코로나19 사태로 음식점을 찾는 손님이 줄면서 종업원과 고용주 모두 힘든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최근 이에 대한 보상으로 팁 비율이 오르고 포장 전문 매장에서도 팁을 받는 강제성이 생기게 되면서 미국에서도 팁 문화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팁 문화 도입에 대한 소비자의 반발이 거세다. 최근 SK커뮤니케이션즈가 성인남녀 1만 2천1백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내 팁 문화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73%(8,934명)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답했다. 또 전체 응답자 중 19%(2,403명)는 '낼 사람은 내고, 안 낼 사람은 안 내면 된다'고 응답했다.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적극 수용할 수 있다'며 팁 문화 도입에 긍정적 의견을 표한 응답자는 5%(723명)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의 팁 문화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팁 문화의 역사성이나 노동 관습 측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팁 문화는 서양과 같은 역사적 배경이나 노동 관습과는 무관하다. 우리나라에서 팁 예절은 별도의 고려 대상으로 주목받아 오지 않았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고급 레스토랑, 고깃집, 골프장 일부에서 접객원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요청하면서 건네는 선물이나 감사 표현 정도로 묵인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접객 서비스 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제도가 적용되고 있다. 접객 서비스 근로자가 당장 팁이 없으면 최저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카카오 모빌리티 서비스업체나 카페,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팁 문화를 도입하려고 하는 목적이 궁금하다. 소비자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닐 것이다. 고용주 입장에선 팁을 받아 갈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니 따로 월급을 더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고 직원의 고객서비스 관리를 하지 않아도 팁 유무에 의해 근로자의 근무태도를 통제할 좋은 유인책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서비스를 잘하는 근로자에게 더 높은 임금을 주는 인센티브 제도는 지속적인 임금 상승 우려가 있기 때문에 선호되지 않는다. 대신 소비자가 근로자의 서비스 질을 평가하고 직접 인센티브를 주도록 하면 고객서비스 관리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미국식 팁 문화의 도입은 고객서비스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다.

 

근로자에게는 팁이 소득상승이 되니 유리할 수 있다.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불친절하고 서비스를 안 좋게 해서 팁을 못 받으면 본인의 책임이겠지만 본인만 잘하면 그 대가를 모두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르바이트하는 입장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의 사례에서 볼 때 팁 전액이 팁 근로자에게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팁을 주방 근로자들과 일정 비율대로 분배하기도 하고 고용주가 팁의 일부분을 수수료로 가져가기도 한다. 또 팁 문화가 보편화되면 임금의 일부를 충당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그 결과 팁 근로자의 임금수준은 시장의 경기변동에 영향을 더 받을 수 있다. 2014년도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팁 근로자가 받은 평균 임금 수준은 근로자 전체보다 크게 낮았으며  일반근로자의 빈곤율은 6~7%인데 반해 팁 근로자의 빈곤율은 10.8~14.5%, 웨이터나 바텐더의 빈곤율은 10.2~18%였다. 미국의 경우 팁 근로자의 최저 임금수준은 일반 최저임금의 1/3에 불과하니 코로나 사태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팁을 받지 못하면 최저임금을 확보할 방법이 없게 되어 빈곤층이 되는 사회문제가 발생하였다.

 

소비자에게는 팁이 보편화될 경우 실제로 지급해야 할 가격이 상승하니 후생이 감소한다.  팁 제공으로 서비스가 좋아지면 그나마 참을 수 있겠지만 좋지 않은 서비스를 받게 될 경우 팁을 주지 않을 소비자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시장 논리로 볼 때 더 좋은 서비스에 더 좋은 대가(팁)를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 가격제도에 이미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의 대가가 필요할지 의문이다. 특별한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의 선물이나 감사 표현은 이처럼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팁 문화가 아닌 방법으로 가능하다. 접객 산업에서 팁 제도를 도입하고 보편화하기 시작하면 물가가 올라 힘들어진 국민 생활을 더 힘들게 할 것이 뻔하다. 더군다나 팁을 지불하지 않은 소비자에게 돌아갈 괄시나 무시 등 서비스 불량 또는 불이익이 우려되며 팁 박스와 같은 도구를 통해 팁이 요구됐을 때 소비자가 느낄 압박감을 의미하는 팁 죄책감(Guilt Tipping)도 무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