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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부모 세대 이야기로 우리 삶 재조명

거실을 하나 가득 채운 대가족, 아이들의 재롱에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다음 차례’라고 말하며 또 다른 아이의 순서를 채근하고, 흔한 동요를 마다하며 손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 ”

가족들은 ‘어린아이에게 이런 노래를 가르쳤느냐?’고 핀잔하며 궁시렁 대지만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는 손녀는 노래를 멈추지 않고, 백발의 ‘덕수’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워 문다. 촉촉하게 젖은 눈가로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1950년 한국전쟁 통에 함경남도 흥남에서 부산으로 피난 온 덕수 가족, 피난길에 여동생과 아버지를 잃고 가장이 된 그는 고모가 운영하는 부산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가게 ‘꽃분이네’를 중심으로 굳세게 살아간다.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들, 형, 오빠, 그리고 아버지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인생을 담은 영화가 차가운 겨울을 맞아 때론 눈물짓고, 때론 웃음꽃을 피우며 따뜻하게 펼쳐진다.

영화 <국제시장>은 전작 <해운대>로 1천145만 명의 관객을 모았던 윤재균 감독이 5년 만에 복귀한 작품이다.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윤 감독은 ‘언젠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길 하겠다’는 바람을 이 작품 통해서 이뤘다.

이전 작품에선 감동의 코드를 세대별로 세분화시켜 영화 전체에 골고루 뿌려놨다면, 그의 이번 작품은 올곧게 ‘아버지’에게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연령대의 관객들이 골고루 감정이입에 이르고 울고, 웃게 만들어 놓았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른 윤재균 감독에게 엄지를 치켜세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연기로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황정민의 연기는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신들린 듯 웃음을 던져주는 오달수의 깨알 연기, 어머니와 아버지의 장영남과 정진영, 다부지게 살아가는 고모 라미란, 철부지 여동생의 김슬기에 이르는 화려한 조연들의 연기는 관객들의 희노애락을 그대로 상영관 안에 뽑아낸다.

물론 이 작품이 대한민국의 주요한 현대사를 관통하면서도 시대정신이나 정치를 비켜갔다는 볼멘 평가도 들려온다. 하지만 너무 많은 걸 담으려 욕심 부리지 않은 윤재균 감독의 판단에 나는 박수를 보내본다. 또한 눈물과 울음이 많아 ‘신파를 벗어나지 못했다’고도 하지만, 그러면 좀 어때? 우리 현대사에 신파는 빠질래야 뺄 수 없는 것이 사실 아닌가?

나는 잔잔한 미소를 떠올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문득 ‘지천명’에 이른 내 아내와 한곳을 바라보며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이 작품을 본 여러분들도 지금부터 적어도 이삼십년 뒤에는 누군가의 손을 꼭 잡아주거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지나간 날들을 훈훈하게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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