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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아버지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아이의 성장담


지금은 유명 연기파 여배우의 남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10년 전 컬트영화의 전설 <지구를 지켜라!>로 등장한 장준환 감독, 카리스마 연기의 지존 김윤석, 떠오르는 스타 여진구, 이 세 명의 조합만으로도 영화에 대해 기대를 갖기에는 충분하다. 비평의 전폭적인 지지와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 리스트 넘버10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그런 영화를 만든 감독, 한때 등장하면 꼭 터진다는 속설 속에 출연 영화마다 빵빵 터뜨리다가 기세가 한풀 꺾여버린 중년배우, <해품달>의 엄청난 성공 이후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리게 한 아역배우. 영화의 성패는 이미 정해진 듯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난 한국영화 흥행 공식에 대해 또 한 번 깊은 우려를 금치 못하게 되었다.

다섯 명의 아버지들이 한 아들을 양육한다. 그리고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한다. 엄격한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 지성을 갖춘 혜안의 아버지, 친구 같은 아버지, 거기에 절대적으로 헌신하는 착한 아버지. 아이는 그들의 장점만을 받아들여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춘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이란 완벽한 ‘살인병기’가 되는 것. 아이는 괴물을 보는 악몽으로 괴로워하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 어느 날 아버지 중 리더인 석태가 살인 현장에 화이를 참여시키자, 화이는 알지 못했던 진실과 마주하며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제 다섯 명의 아버지는 화이의 적이 된다.

아버지의 아들이었던 자가 아버지를 극복하고 성인의식을 치루며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는 이야기는 실은 고전적인 플롯이다. 그간 무한히 반복되었던 이 이야기에서 변주된 부분은 다섯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다섯 아버지가 존재하는 현실 이면에 숨겨진 사연에 궁금증을 가지게 되고 영화는 그 힘을 가지고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이끌어간다.

하지만 비밀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고 설득력도 없다. 아이를 잡아가둔 아버지들의 사연은 없고, 다만 영화는 교복입은 아이의 잔혹한 액션을 중시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방향을 잃어버리고, 아름다운 여진구의 얼굴과 몸을 보았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어라’라고 가르치는 절대악의 존재를 너무 쉽게 인정하고 소년이 변모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논리 없이 관객으로 하여금 그냥 믿으라고 강요함으로써 영화는 철학이 없는 그저 그런 오락물이 되었다.

어쨌든 멀티플렉스 관을 다수 차지한 이 영화를 많은 관객들이 보게 될 것이고, 우리는 감독의 심오한 의미를 찾으려고 미로 속을 헤맬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돋보였던 여진구의 연기를 칭찬하며 재미있는 영화 한편이었다고 스스로 달랠 것이다. 약한 논리 구조에도 피와 잔인함을 부각시키며 신파스럽게도 눈물 한번 뽑아주면 관객들이 좋아하리라는 안일한 영화 만들기. 교훈, 의미, 재미, 미학, 어느 한 부분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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