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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덕후’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켜봐야 할 문화

십덕후를 부정적 문화로 매도하는 것은 대중문화의 편협함이 원인

2010년 초, 십덕후의 출현은 사뭇 충격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스포츠머리, 자기관리가 실종된 몸매, 패녀서블함이나 단정함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은 안경을 쓴 땅딸막하고 옆으로 퍼진 한 사내가 방송에 나와 일본 애니메이션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의 주인공 페이트가 자신의 여자친구이며 곧 결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페이트와 관련된 각종 피규어와 캐릭터 상품을 사 모았고, 캐릭터가 그려진 베개를 안고 다니며 종종 키스를 날렸다. 그는 웨딩 촬영까지하며 “페이트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라는 굳은 의지를 내비췄다.

십덕후라 불린 사내의 외모와 분위기는 인기 없는 남자의 스테레오타입이었다. 사전적 의미는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이란 뜻의 일본어이지만 히키코모리 등과 연결되어 일본 내에서도 이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바 있는 단어 오타쿠를 우리 인터넷식 언어유희로 변형한 오덕후에서 그 덕력(力)이 가히 두 배는 된다고 하여 십덕후라 불린 사나이. 그가 이슈 생산을 넘어 빅히트를 치자 이에 편승한 방송사는 이십덕후, 여자 십덕후들을 양산해 전파를 태워 보냈다.

반응은 일방적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의 놀람과 ‘왜 저렇게 사느냐’의 안타까움 한 스푼에 다량의 욕과 비방, 비난이 뒤따랐다. 이해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사람들은 분노했고, 각자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돌팔매를 가하며 이슈를 키웠다. 다른 이들이 볼 때 십덕후나 오덕후는 사회에서 낙오된 혹은 도태된 불순물이었다. 먹고 살려면 스펙 쌓고 바쁘게 뛰어다녀야 할 텐데 다 큰 어른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푹 빠져 있다니, 이들은 분명 어떤 지점에서 성장하기를 거부하거나 멈춰 있고, 경제 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힘을 쏟는 한심한 잉여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각자의 세상에 숨어 있는 각종 ‘오덕’들은 고개를 드는 즉시 두더지 게임을 하듯 놀림감이나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다.

중세시대로 치면 마녀사냥과도 같다. 경제력이 없는 과부 등이 홀로 약초 등을 캐서 스프를 끓이다가 마법을 부리는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던 것과 같다. 오덕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회 부적응에서 오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엉뚱하게 푸는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다. 단지 자신의 취향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내가 그것을 왜 좋아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품으며, 그 질문의 해답을 찾아가는 데 기꺼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십덕후 같은 특수 사례나 사회부적응이란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의 ‘질병’차원의 문제이지 오덕이란 단어에 수식될 대표적 이미지는 아닌 것이다.

사실 오덕은 예전말로 하면 수집가에 가깝다. 그 예전 우표를 수집하고 동전을 수집하는 수집가들이 대중문화가 범람하고 영화, 비디오, TV의 발달과 더불어 인터넷이란 매체가 탄생한 시대를 만나, 물리적인 수집을 넘어서 자신을 사로잡은 콘텐츠의 세계관에 동조하고, 동경하는 보다 더 정서적인 몰입을 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갈등의 요소가 발생한다. 어떤 이가 빠져 있는 문화나 콘텐츠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오덕들을 볼 때 전혀 이해할 수 없거나 상식선에서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걸 보고 다양성의 존중은커녕 거부감을 넘어 손가락질과 돌팔매를 한 것이다.

특히 오덕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장르가 일본 망가와 애니메이션인 것은 더 이런 경향을 심화시켰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7080세대를 지배한 팝 문화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1990년대에 밴드 ‘엑스재팬’을 위시한 일본문화가 우리 대중문화의 한 서브컬쳐(한 사회의 지배적 문화가 아닌 주변적 계층의 하위문화)로 자리 잡았었다. 물론 해적판에 의존한 불법 문화였다. 98년에서 04년에 걸쳐 일본 문화가 전면 개방되기까지 일본 문화 개방을 놓고 논란에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어느 번화가를 나가든 이자카야 천국인 요즘 대학생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왜색(倭色)’이란 말이 호환마마와 같던 시절이었기에 어른들의 시선에서 일본 문화를 탐닉하는 젊은이들이 좋게 보일 리가 만무했다.

일본 문화 관련된 덕후가 아니더라도 밀리터리, 철도, 옷, 힙합, 인디음악 등 다양한 덕후가 있다. 무엇에 빠져 있든 소통보다는 혼자서 즐기는 문화인데다 일종의 ‘순수함’이 일반적인 수준보다 훨씬 짙게 배어난다. 자신이 빠져든 대중문화 상품을 실제 세계처럼 대하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성장의 일시정지를 뜻한다. 지금 말로하면 키덜트 문화의 중추인 셈이다. 하지만 KBS1TV의 다큐 시리즈 <공부하는 인간>에서 보듯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쉼 없이 진격 앞으로 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서 오덕후들의 존재는 내가 확실히 제친 도태된 누구, 낙오자의 모습이다. 혹은 나에게 없는 순수함이나 무엇이 남은, 그러나 부럽지는 않은 존재다. 즉, 나와 다른데 부러운 멘토가 아니다. 이런 의식 위에 자신의 발언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과 SNS이란 매체의 발달로 인해 돌팔매에 들어가는 돌의 양이나 크기가 커져버렸다.

그렇다고 오타쿠가 한국과 일본의 전유물은 아니다. 시쳇말로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스케일이나 인원수로 봤을 때 오덕 계열의 왕좌는 <스타워즈>와 <스타트렉>이란 양대 산맥사이에 <어벤져스><슈퍼맨><스파이더맨>등의 마블 코믹스와 DC코믹스를 끼고 사는 미국문화권에서 차지하고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오덕들은 ‘GEEK’이라 불리며 놀림을 받는다. 만화나 <스타워즈>의 세계관에 빠진 덜 자란 남자들의 전형을 그려내는 코미디 영화들이 한 장르를 이루고 있고, 국내에서도 인기리 상영 중인 <빅뱅이론> <커뮤니티>와 같은 코미디 시트콤이 모두 미국식 오덕(geek)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다. 그곳에서도 오덕은 역시나 쿨한 것과는 전혀 관계는 없지만 웃음으로 승화하는 산업화까지는 이뤄졌다. 실리콘밸리의 괴짜들을 보여주는 방식도 그렇다. 미국은 오덕의 존재를 키덜트 문화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일종의 긍정적 포옹인 셈이다.

오늘날 대중문화는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오덕 문화에도 우리 사회의 불안과 그 속에 살아가는 자의 히스테리가 드러난다. 우리는 남들처럼 살기를 원한다. 최소한 남보다 못하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체면의 사회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과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는 성과 사회다. 대학, 취업, 결혼, 집 마련 등 우리 사회에 불문율처럼 작동하는 타임테이블에 맞춰서 최소한 남들처럼 사는 삶을 어렸을 때부터 강요받고 자라온 사람들에게 개인의 취향을 따라가는 건 도태를 위한 달콤한 유혹일 뿐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두루 좋아하고, 남들과 다른 특별난 것은 쓸 데 없는 짓이라고 받아들인다.

오덕이란 단어에 부정적 이미지를 다 걷어내고 나면, 취향이란 단어가 남는다. 탤런트 이시영이 처음 뜬 것도 권투가 아니라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건프라 오덕임을 인증하면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매진하는 모습에서 매력이 터졌다. 오덕들은 모두 십덕후와 같은 사회 부적응자거나 연애 못해본 공대 남자생일 것이란 편견을 찢어놓으며 그 충격까지 매력으로 흡수했다. 이처럼 무언가 자신이 선택한 한 가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 한 예가 최근 남성복 패션산업의 두드러진 경향인 워크웨어와 밀리터리 웨어와 같은 빈티지 열풍이다. 1920년대 군복이나 1940년대 작업복과 유사한 옷을 만들고, 그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도 예전의 기계와 부자재, 방직기술을 그대로 재현하는 ‘복각’에 얼마나 충실한지에 따라 브랜드의 성패가 갈린다. 다시 말해 예전 옷들을 얼마나 많이 수집하고 깊게 공부했느냐는 그 ‘덕력’이 중시되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의 하버색(Haversack), 버즈 릭슨(buzz rickson), 영국의 나이젤카본(Nigel Cabourn), 국내의 스펙테이터(spectator) 등의 브랜드들은 모두 이런 오덕의 방식으로 성공을 구가중이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폴로 랄프로렌’으로 유명한 미국의 디자이너이자 미국 패션의 거성인 랄프로렌이 가장 신경 쓰는 브랜드이자 가장 고가 라인이 바로 미국 서부 개척시대 당시의 빈티지 의류를 만들어내는 ‘RRL’라인이다. 재밌는 것은 이 전 세계적인 유행과 경향의 모든 발원지가 바로 오덕의 나라 일본이라는 것이다.

물론, 마이너는 마이너다. 이것을 꼭 주류의 무엇으로 연결시키겠다는 계산보다 다양성을 여유롭게 인정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탐닉하는 사람을 지켜봐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모두 싸잡아 십덕후와 같은 안타까운 부작용을 오덕의 전부인양 여기는 시선이 문제를 키우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패션 산업에서의 일본 오덕들이 전 세계 시장의 판세를 바꿔놓은 것처럼 우리도 다양한 서브컬쳐가 존재함을 받아들이고 돌 던지고 욕 한 번 하는 배설보다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오히려 오덕을 음지로 내몰고, 비웃는 당신의 편협함이 우리 대중문화를, 더 나아가 우리 산업의 다양한 가능성을 말라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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