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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수익창출보다 중장기적으로 한국영화산업 육성할 준비 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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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추창민 감독의 영화 ‘광해’가 누적 관객 수 천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 사상 일곱 번째로 천만영화 반열에 올랐다. ‘광해’가 개봉하기 직전에는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밀어내고 한국영화 최다 관객 수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 이후 3년 동안 잠잠하던 한국영화시장에 두 편이나 되는 천만영화가 나온 셈이다. 한 해에 한 편 나오기도 힘든 천만영화가 2012년 하반기에만 두 편이나 나왔으니 말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영화가 이만큼이나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실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둑들’의 경우 티켓파워가 현저히 떨어졌음에도 최다관객 수 기록 경신이라는 타이틀에 눈이 멀어 과도한 상영관 수를 배정받았다. 정상적이었다면 관객 수와 비례해서 상영 횟수를 줄이는 게 당연한 경우였다.

‘광해’의 경우는 ‘도둑들’처럼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도둑들과 마찬가지로 천 개가 넘는 상영관을 확보했었다. 물론 두 영화 모두 흥행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매력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두 영화가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흥행성만으로 천만영화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현재 한국영화시장에는 씨제이이앤엠,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미디어플렉스 라는 세 개의 거대투자배급사가 존재한다. 이들 투자배급사는 2011년을 기준으로 한국영화시장 매출액의 56.4%를 점유했다. 한국영화로 한정하면(이 해 개봉한 한국영화 150여 편 중 이들 투자배급사의 영화는 50.5편이다) 72.9%로 경악할 만한 수치이다(12년 09월 기준 72%). 국내에 약 96개의 배급사가 있음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씨제이,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3개의 거대투자배급사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배급사는 실제로 살아남기가 힘든 실정이다. 거의 독과점에 가깝다. 게다가 이들 거대투자배급사는 직간접적으로 상영관을 확보하고 있다. 위의 투자배급사 순서대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둑들’과 같은 기이한 형태(텅텅 빈 상영관이 대부분이지만 상영관 숫자를 줄이지 않는)의 상영이 가능했다. 영화가 거대자본이 투입되는 산업임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으나, 이처럼 특정자본에 종속되는 구조는 명백히 문제가 있다. 투자배급사의 절대 목표는 한국영화산업의 발전이 아니라 수익창출에 있기 때문이다.

‘도둑들’이나 ‘광해’를 재밌게 본 관객들도 많을 것이다. 이와 같은 걱정은 오히려 지금 잘나가고 있는 한국영화에 괜한 꼬투리잡기라는 시각도 있다. 물론 지금 한국영화는 어느 때보다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영화시장을 거시적으로 봤을 때는 명백히 문제가 생긴다.

한국영화산업은 제반문화가 약하다. 미국의 디즈니나 마블코믹스처럼 만화를 통해 검증된 캐릭터도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둑들’같은 스타마케팅을 통한 영화제작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스타마케팅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영화제작 단가의 비약적인 상승이다. 이는 곧 투자배급사 입장에서 재정적 부담을 느낀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당연히 특정 영화에 상영관 몰아주기나 ‘도둑들’과 같은 타이틀 만들어주기 같은 인위적인 행동이 나올 것이 뻔하다. 중소규모의 투자배급사는 점점 더 상영관 확보가 어려워질 것이고 스타마케팅으로 이미 재미를 본 거대투자배급사는 지금과 같은 상영 행태를 여전히 지속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지금보다 거대투자배급사의 영향력이 더 커졌을 때 그들 투자배급사 중 하나라도 재정적 타격을 받는 순간 한국영화시장 자체가 휘청거리게 된다는 치명적 문제가 생긴다.

또한 영화의 다양성이라는 차원에서도 문제는 심각하다. 최근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나, 웹툰 원작의 영화들이 개봉되거나 제작되고 있다. 문화의 크로스오버가 유기적으로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영화시장 자체에는 큰 힘이 되지 못한다. 단기적으로는 ‘은교’나 ‘이웃사람’ 같은 흥행작이 나올지 모르나 앞으로 영화가 계속 타 장르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실정에서 스타마케팅 영화가 한국영화시장의 주류제작방법으로 자리매김하면 한국영화 자체의 기초체력이 부실해져버리는 건 당연하다.

이는 할리우드영화시장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시장은 기초체력이 튼튼하다.

할리우드의 영화제작 시스템을 살펴보면 크로스오버적인 영화도 분명 존재하지만 다양한 영화들이 제작, 상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다른 매체의 힘을 빌리지 않은 자체의 매력적인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스타마케팅은 할리우드처럼 기초체력이 튼튼했을 때나 대외적인 경쟁력을 가진다. 한국영화시장처럼 기초체력이 부실한 상태에서는 오히려 자국 영화의 기초체력을 갉아먹을 확률이 크다.

한국영화시장은 국내시장만 바라보기에는 충분히 덩치가 커졌다. 이제는 당장의 수익창출보다 중장기적으로 한국영화산업을 육성할 체계적인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독과점적인 구조를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독과점은 법률로써 규제하고 있지만 영화시장처럼 보이지 않는 문화산업에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오래전 할리우드 영화로부터 우리 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스크린 쿼터제를 실시했다면 이제는 거대투자배급사의 횡포로부터 영화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 조치가 필요한 때이다. 예를 들어 소위 퐁당퐁당 이라고 말하는 상영 형태부터 고쳐야 한다. 하나의 상영관을 시간대별로 나눠 오전시간에는 비인기 영화를 상영하고 이후 시간에는 인기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누가 봐도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하나의 상영관에서 하나의 영화를 상영해야 관객의 입장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가 보장된다.

또한 상영관 쿼터제도 필요하다. 전체 상영관 중 1/3이나 혹은 절반에 가까운 상영관을 특정영화에 몰아주는 것은 관객에게 그 영화를 보라고 강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한 영화나 다양성 영화중에서도 영진위의 추천을 받은 영화를 의무상영하는 지정상영관의 등록도 필요하다. 더불어 소규모상영관의 확충도 절실하다. 거대자본에 종속된 멀티플렉스 극장과는 달리 순수하게 관객의 입장에서 다양한 영화를 제공해줄 극장이 턱없이 부족해져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혹자는 이와 같은 것들을 시장논리에 어긋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독과점은 명백히 바로잡아야 할 문제점이다.

사실 제도적인 규제보다 시급한 것은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의 태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산업이라고 해서 영화시장의 독과점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의 부당함에 대해 분노하는 관객은 많지 않다. 거대투자배급사는 영화 수입이 티켓판매에 좌지우지되는데 반해 그 티켓을 구매하는 관객의 눈치는 전혀 보지 않는다. 사실상 관객들은 자신들이 겪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거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몇 영화의 상영관 독점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를 못 본 기억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영화시장에서 관객이 가지는 힘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워낭소리’의 롱런이나 ‘파이란’의 재상영은 관객의 힘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일례이다.

한국영화가 발전한 만큼 이제는 한국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이다. 거대투자배급사가 골라주는 영화를 받아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볼 권리를 충분히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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