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폭압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정부 또는 민간 차원에서 성대하고 다양하게 열렸다. 그러나 이들 기념행사 대부분이 광복 70주년을 구실로 내세운 상투적이고 형식적인 이벤트성 행사나 축제에 머물렀을 뿐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겨레사랑과 독립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려는 취지와 거리가 멀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우리 현대사에서 광복은 남북분단 및 동족상잔의 한국전쟁과 불가분하게 결합된 역사적 사건이다. 아쉽게도 우리민족의 해방은 자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8·15 해방은 일제가 연합국에서 패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 물론 우리민족은 나라를 강탈당하기 전인 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내내 민족해방운동을 줄기차게 이어왔다. 그러나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제의 폭정과 탄압으로 우리의 민족운동은 자력으로 민족해방을 쟁취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비록 태평양전쟁 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대일전에 참전하고 미군과 공동으로 한반도 침투훈련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전체로 보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승전국인 연합국을 상대로 독자적 발언권을 행사할 정도의 영향력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로 말미암아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은 1970년 5월 1일에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당시 명칭은 한국민속연구소였고, 1973년에 한국학연구소로 개편되었습니다. 한국학연구소는 어학, 문학, 역사학, 한문학, 철학, 예술학, 민속학 등 한국학 여러 분야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학술연구를 진행하고, 학술지와 연구총서를 발행하면서 영남권의 한국학 연구중심으로 성장해왔습니다.우리나라가 세계화, 국제화시대로 진입하기 시작한 1989년 한국학연구소는 ‘한국학의 세계화’를 표방하며 한국학연구원으로 확대·개편되었습니다. 우리 전통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세계화 시대의 역사적 과제들을 해결하는 현재적 자원으로 재창조하고, 이를 인류사의 진보에 기여하는 보편적 문화자산으로 세계화하기 위해서입니다.한국학연구원은 ‘한국학의 세계화’를 위해 두 방면으로 노력해왔습니다. 하나는 세계화 시대의 역사발전 방향이라 할 지방화의 문화적 구심이 될 한국학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세계화 시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은 세방화(glocalism)입니다. 세방화는 지역사회를 전지구적 사유에 입각해 삶의 자율성이 실현되는 인간적인 생활세계로 혁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문화에는 세방화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적 자원이 풍부
사람은 그 나름의 일정한 삶의 방식을 갖는다. 삶의 방식은 세상살이에 대한 그 나름의 가치관과 세계관과 세상사는 요령을 담고 있다. 사람은 언제나 가족, 마을, 국가 등등의 사회를 형성하고, 이를 생활 터전으로 삼아 살아간다. 그런 까닭에 삶의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도,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공통의 삶의 방식을 공유해야 한다. 이를 문화라고 부른다. 역사나 사회가 건전하고 순조롭게 발전하는가 그렇지 못한가는 그 사회성원들이 공유하는 생존문화, 생활문화가 얼마나 건강하고 진취적인가에 달려 있다.우리 역사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는 경세가는 단연 세종대왕이다. 세종이 위대한 것은 군왕과 사대부들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전하고 진취적으로 다스릴 민본정치문화를 확립한 것이다. 세종은 민본의 경세문화가 자신이 통치하던 당대를 넘어 조선 왕조 내내 지속되기를 염원하며 지난 역사를 정리, 평가하는 작업을 만년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삼았다. 그 결실이 세종 28년(1446)에 착수되어 문종 원년(1451)에 완성되는 고려사’이다. 고려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은 태조 원년부터 시작되지만 세종 말년의 고려사 정리는 이전의 편년체 정리방식과는 달리 기전체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