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조금동두천 26.8℃
  • 구름많음강릉 20.1℃
  • 구름조금서울 27.0℃
  • 맑음대전 26.0℃
  • 구름많음대구 22.3℃
  • 구름많음울산 19.8℃
  • 구름많음광주 28.4℃
  • 흐림부산 23.0℃
  • 맑음고창 29.0℃
  • 구름많음제주 20.6℃
  • 구름조금강화 25.7℃
  • 맑음보은 23.4℃
  • 맑음금산 25.1℃
  • 흐림강진군 27.0℃
  • 맑음경주시 19.4℃
  • 흐림거제 21.9℃
기상청 제공

독도, 영토문제 아닌 민족역사 그 자체

한일 간 독도문제, 역사 · 영토문제가 아닌 정치문제화 되어버려

URL복사
땅을 경계 짓는 것은 인간 역사의 시원(始原)이다. 모든 민족의 역사의 시초에는 땅(영토)의 취득이 존재한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민족)은 그 땅에 대한 관할권을 가진 자에게 복종한다. 그렇기 때문에 땅과 민족은 불가분이며, 이를 ‘영토민족주의’라 한다. 한 치의 땅에 대해서도 각 민족이 들고 일어나는 이유이다.

영토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재화이다. 얻는 쪽과 잃는 쪽은 반드시 제로섬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영토문제는 치킨게임의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고, 당사국들은 치열한 갈등을 겪으며 국가 간 관계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독도문제는 한일 간의 역사 문제와 얽혀있어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한국은 일본이 1905년 2월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로 편입한 행위를 식민지 침략의 첫걸음으로 여기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식민지 영토권’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1904년 2월 일본군의 한반도 상륙을 시작으로 러일전쟁이 시작되었다. 한반도는 전쟁 초기는 주전장으로, 그 이후에는 후방의 전쟁지원지역으로서의 역할이 부여되었다. 그 후 1905년 9월 포츠머스 강화조약이 체결되고, 이어서 11월 을사(보호)조약으로 한반도는 실질적으로 일본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사이 1905년 2월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시기적으로만 봐도 일본의 독도 편입은 러일전쟁 중 한반도가 군사적으로 점령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2006년 4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독도 특별담화에서 일본의 독도편입을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이라 규정하고, 독도는 한국의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독도는 영토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반면에 일본은 1905년 합법적으로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했으며, 독도문제는 영토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도의 소유권을 따지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단을 받자고 한다. 그럴듯하게 들리나 그렇지 않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주장은 장물(贓物, 절도 등으로 취득한 물품)을 두고 소유권을 따져보자는 것으로 들린다. 논리를 비약하면, 독도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소유권을 따지기 전에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일본의 역사적 침략범죄로 다뤄져야 하는 것이다.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응하지 않는 이유이다(ICJ는 당사국의 응소가 없으면 재판이 진행되지 않는다).

이처럼 양국의 근본적인 입장차이로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설사 ICJ의 판결이 난다고 해도 한국이나 일본 국민들이 자기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받아들이겠는가. 그렇다고 일본이 침략의 역사를 사죄하고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정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하면 한일 간의 독도문제는 역사나 영토문제가 아닌 정치문제화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간의 독도문제에 대한 외교적 대응에서 한국정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조용한 외교로 일본을 자극하지 않고 독도문제가 국제분쟁화하는 것을 피하려고도 했으며, 반대로 일본의 도발에 적극 대응하기도 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양국 간에는 최악의 상태는 피해야 한다는 묵시적 합의가 존재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를 전후하여 성립된 독도밀약이 그것이다. 독도에 대해 양국은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나 상대국은 이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으며, 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독도에 대한 한국의 현실적 관할권을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이 밀약은 깨져 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으며, 한일 간의 독도문제는 더욱 첨예화하고 있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이상 일본이 독도를 빼앗을 방법은 전쟁 이외에는 별로 없다. 독도를 빼앗는 것보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훨씬 더 클 것이기 때문에 그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과잉 반응할 필요는 없으며, 또 독도가 한일관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독도에 관련된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분노하고 외교는 독도문제에만 매달린다. 그러다 보니 한일 관계에서 다른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독도는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현상유지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빼앗길 염려가 없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독도가 전부가 아닌 것이 아니라, 독도를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독도는 이미 우리 것이 되어 있다.

그래도 이것만은 필요하다. 각 개인이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가진 자의 최소한의 의무이자 양식이다. 이를 위해 지난 학기말에 계명대학교 학생들이 ‘독도애(愛)동아리’를 만들었다. 독도사랑 활동을 통해 독도를 알고, 독도를 지키자는 취지이다. 관심을 가져보자.

관련기사





[사설] 미디어 대한 맹신, 시민의 능동적 참여로 극복해야 미디어가 부모나 교사의 역할을 일정 부분 대체한 지 오래다. 부모에 안겨 스마트폰 영상을 응시하는 아이의 눈길과 강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휴대폰으로 해결하려는 학생들의 손놀림을 보면 어쩌면 상상하는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이제 미디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의존하는 미디어는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우리를 끊임없이 교육시킨다. 이로 인해 이용하는 미디어 채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되고, 유사한 신념과 가치체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보수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인식은 보수적 생각으로 이어지고, 진보적인 사람은 자신과 유사한 성격의 매체 이용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서 사유의 편식은 더욱 강화되고, 자신이 이용하는 미디어가 현실이 되고 진리처럼 받들어진다. 하지만 미디어가 다루는 현실은 지속적으로 중재되고 가공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내용에는 미디어 조직의 이윤이나 정치 권력적 욕망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되고 주관적 해석과정이 관여한다. 동일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서도 매체마다 바라보는 대상이 다르고 설명이 차별적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