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15.7℃
  • 구름조금강릉 16.4℃
  • 서울 18.8℃
  • 구름많음대전 19.2℃
  • 구름많음대구 19.2℃
  • 박무울산 18.1℃
  • 맑음광주 20.0℃
  • 맑음부산 20.3℃
  • 구름조금고창 20.6℃
  • 맑음제주 22.2℃
  • 맑음강화 16.7℃
  • 구름많음보은 15.5℃
  • 흐림금산 17.0℃
  • 맑음강진군 18.0℃
  • 흐림경주시 18.6℃
  • 맑음거제 18.5℃
기상청 제공

타불라 라사 115 (계명교양총서 115선)- 유토피아

URL복사
“양들은 예전에는 온순하고 매우 적게 먹는 동물이었는데 그러던 것이 이제는 몹시 게걸스럽고 사나워져서 사람도 모조리 먹어 치운다고 합니다.” 이 말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가 한 말이다. 양이 사람을 먹어 치운다는 것은 영국의 양들이 육식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대신 이 말은 농업 중심의 봉건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고 있었던 16세기 영국의 상황에서 농노들이 겪는 고초를 유머러스하게 비꼰 것이다.

당시 영국은 엔클로저(Enclosure) 운동이 한창이었다. 봉건사회는 영주가 토지를 소유하고 농민들에게 소작을 주어 경작하게 하는 농업 중심 사회였다. 그런데 영국의 산업이 발달하고 국제 무역이 커가면서 양모 가격이 폭등하게 된 것이다. 영주들은 소작농에게 얻어지는 이윤보다 양을 키우는 것이 더 큰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결국 소작을 주던 땅을 거둬들여 방목지를 만들고 양을 키웠다.

하루아침에 경작지를 잃게 된 소작농들은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가난에 시달렸고, 살기 위해 도둑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을 구제하기는커녕 감옥에 집어넣거나 사형에 처했다. 결국 『유토피아』에서 히슬로다에우스가 한 말은 귀족들의 탐욕 때문에 농노들이 기아에 빠지고 범법자가 되는 15~6세기 영국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는 이외에도 국민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 사유재산제의 폐해, 인간의 자만심과 욕심 등에 대해 비판하며, 그런 부조리가 없는 나라인 ‘유토피아’의 각종 제도와 생활상을 전달한다.

『유토피아』는 작가 모어가 작품 안의 서술자로 등장하여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라는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일종의 액자소설이다. 이 작품의 제목인 ‘유토피아(Utopia)’를 그리스 어원에서 보자면 ‘u(없다)’와 ‘topia(장소)’라는 말의 합성어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뜻한다. 히슬로다에우스는 이 국명이 초대 왕인 ‘유토푸스 왕’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름 자체는 이 나라가 가상의 나라이며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히슬로다에우스는 유토피아의 사회 구조, 재화의 분배, 행정 단위는 물론 결혼 풍습, 식사 예절, 이사, 여행, 노예제도, 전쟁 전술 등 유토피아의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한다. 그의 설명 속의 유토피아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왕도 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공공의 이익과 합리성이 존중되는 사회이다. 유토피아에는 화폐가 없고 집과 옷을 비롯한 생필품은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된다. 남녀는 어릴 때부터 평등하게 의무교육을 받으며, 여성도 원하면 군대에 갈 수 있다. 대부분의 공직자는 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임기는 1년에 불과하다. 직업의 귀천도 없고 도시인과 농민들은 주기적으로 거주지가 교체되며 집도 10년이 지나면 교환한다. 여행을 할 때에는 허락을 받아야 하고 아이들은 공동육아를 한다.

유토피아는 이렇듯 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공공복지를 지향하는 통제사회이다. 그래서 토마스 모어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후에 공산주의자들은 그를 공산주의의 원조로 간주했다. 모스크바의 볼셰비키 기념 오벨리스크에 위대한 사회주의 사상가와 혁명가 19인 중 한 명으로 토마스 모어의 이름이 들어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히슬로다에우스는 유토피아의 일사불란한 사회제도 외의 또 다른 모습, 즉 다소 희극적인 측면 역시 전달한다. 몇 가지 예로, 유토피아에는 금과 은이 풍부하지만 그것으로 액세서리를 만들어 착용하는 것은 놀림거리가 될 뿐이다. 그래서 유토피아인은 금으로 요강을 만든다.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가장 먼저 쓰는 전략이 적국의 왕을 암살할 사람을 돈으로 매수하는 것이며, 결혼할 때는 당사자들이 서로 나체를 보여준 후 결혼을 결정한다.

2권 말미에서 토마스 모어는 자신이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가 말한 모든 것에 동의할 수는 없다.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었으면 좋겠다고 염원할 만한 요소들이 많다고 본다.’라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이 말로 미루어 볼 수 있는 것은 모어가 이 작품을 쓴 것은 유토피아라는 나라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 역으로 자신이 사는 영국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토마스 모어는 당시 신분제와 사회변동 등으로 문제 투성이인 영국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을 우회적으로 제시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는 영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근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 치하에서 대법관을 지낸 성공한 법률가이자 정치가였다. 유토피아가 사유재산을 부정한다고 해서 토마스 모어가 사회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독실한 종교인이었으며 신앙은 그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공직자이면서도, 청빈하고 부지런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고 전해지는 토머스 모어는 결국 가톨릭 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죽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여 교황청에서 분리되길 원했던 헨리 8세의 법령에 찬동하지 않아 투옥당했으며, 1535년 반역죄로 처형됐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모어는 자신을 위해 우는 자식들을 오히려 위로하고, 처형 명령을 내린 헨리 8세를 위해 내세에도 기도하겠다고 말하면서 사형집행인에게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니 안 잘리도록 조심해 달라’고 농담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모어는 죽은 지 400년 후인 1935년에 가톨릭 성자로 추대됐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