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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인, 그들이 설 곳은?

‘문학이라는 덫에서 벗어나라’, ‘자유로워 져라’

작은 나라, 그러나 역동적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런데도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우리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헬조선을 벗어날 수 있다면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 어찌됐건 우리나라에는 많은 예술인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 중에는 이른바 글을 업으로 삼는 문인들이 꽤 많다. 여기서의 업은 경제활동을 말하기도 하고 글을 쓰는 일, 즉 행위를 뜻하기도 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문인들에겐 고뇌가 따른다. 특히 젊은 문인들에게는 장래 글만 써서 경제적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이자 회의가 아닐까 한다.

문인 중에서 비교적 젊은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청년문인이라고 가정하고 그 청년문인들이 우리 문학계에 아니 사회 전반에 걸쳐 설 곳이 있느냐, 즉 생활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청년문인은 이런 점에서 안타깝게도 임계점에 거의 도달했다. 문학적 소양이 있고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고 해도, 현실에서 전투적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글은 무기나 방패가 되기 어렵다. 성격은 다르지만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금언은 자조의 변에 지나지 않는다.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전업 작가나 본업이 따로 있으면서 문학을 겸하거나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이 글을 쓴다고 해서 그들이 청년문인들이 지향해야 할 롤모델인가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청년문인이 문학적인 글을 쓴다고 할 때, 기성작가로서 주례사 형식의 덕담이나 희망적인 메시지만을 전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떠나 양심의 문제로서 인생을 더 산 사람이 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낙관적인 말이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야기일 때, 이는 입에 발린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창작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찬 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하라는 뜻에서 던지는 고언인 것이다. 그저 달콤한 유혹으로 창작의 길을 낭만적으로 이끌기에는 글쓰기가 어렵고 힘든 여정으로서 평생을 함께 가야 하는 형극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런 길을 청년문인들에게 대안 없이 무책임하게 권할 수는 없다.

반면에 문학의 길은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고 글을 완성하면, 세상 무엇보다도 보람 있고 희열을 주는 일이기에 많은 문인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 끈을 놓지 못하고 묵묵히 가고 있는 것이다. 청년문인들이 자신이 힘겹게 쓴 원고가 비록 경제적 재화가 되지 못하더라도 성공한 일부 선배문인들을 모방하려 하지 않고 뚝심 있게 창작세계를 열어나간다면 시대를 초월한 대문호가 되리라 믿는다. 이는 헛꿈이 아니다. 연전에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 소설가를 보면 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소명의식으로 글을 쓴다면 진정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 고고의 성을 울리며 탄생할 것이다.

문학을 하고자 뜻을 둔 청년이라면 이 땅에서 서려고 하지 말라. 글쓰기가 자신에게 물고기를 잡을 그물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쓰지 말라. 문학이라는 덫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자유로워져라. 생활이 가능한 직업을 찾고 그 일에 매진하라. 그리고 문득 어느 날 글이 심히 고플 때 쓰면 된다. 글쓰기에는 시효도 한계도 없다. 모름지기 청년문인이라면 글을 물이나 공기로 생각해야 한다. 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글을 업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청년문인이 경제인구의 한 존재로서 어떻게 해야 홀로서기를 잘 할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청년문인이 설 곳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러니 서려고 하지 말라. 밭이 부족한데 호미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청년시절에 글을 써야만 좋은 글이 나온다는 환상에서 일찍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성이 살아있고 순발력과 패기가 있다고 해서 성공한 문인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혹여 낭중지추라고, 재능이 있고 거기다 문운이 따른다면 평생 글만 써도 문명을 날리며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예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전업으로 문학을 한다면, 이는 가족 중 누군가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서글픔에 빠지게 된다. 청년문인들 중에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이 있다면 하루빨리 문학을 포기하고 가족에 폐 끼치는 걸 중단하라.

문학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도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문학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이런 역설에도 불구하고 글을 못 써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면 그땐 눈에 불을 켜고 글을 써라. 비록 부모의 슬하에 있거나 배우자의 경제력에 의지하더라도 그것이 시가 됐건 소설이 됐건 죽을힘을 다해 써라.

진부한 말이지만 글은 배고플 때 나온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편하고 즐거운 일만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관념적인 글, 결국 죽은 글만 열심히 써대다 선배 문인들의 족적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제풀에 주저앉고 만다.

문인에게 무슨 청년이 있고 노년이 있겠는가. 나이를 초월하여 문학 작품을 창작하려는 시대적 사명이 없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절필하고 다른 생활 방도를 찾으려고 노력하라. 우리 사회에 청년문학이 없듯이 청년문인도 없다. 그건 글을 쓰고 있거나 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만든 허상이요 허례다. 비감이 들지만 청년문인은 우리 사회에 없다. 다만, 당찬 글쓰기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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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