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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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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시우스는 판자로 만들어진 배(T)를 갖고 있었다. 배가 낡아가자, 그는 건선거(배의 수리 또는 검사 장소) ㉮에서 T의 낡은 판자를 새 것으로 교체하는 한편, 낡은 판자를 모아 건선거 ㉯에서 새로운 배를 건조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마침내 ㉮의 배는 모두 새로운 판자로 대체되었고, ㉯의 배는 모두 낡은 판자로 건조되었다. 최초의 배 T와 동일한 것은 ㉮의 배인가 또는 ㉯의 배인가?” ‘테시우스의 배’라는 이 역설은 “동일성의 기준이 무엇인가?”란 질문을 제기한다. 만약 T 전체가 단번에 새로운 배로 대체되었다면 더 이상 T는 없겠지만, 위의 사례는 T의 부품들이 서서히 대체되므로 이런 문제가 생긴다.

물질적 측면만이 고려되는 무생물과는 달리 인간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다. 인간은 정신(특히, 기억)과 신체의 특징을 가지므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동일시하는 기준’은 그것들 가운데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찾아야 한다. 세포들이 계속 생성소멸하고, 또한 새로운 공기와 음식물의 섭취/배출을 통해 신체의 구성요소는 변한다. 따라서 동일성의 본질적인 요소가 신체적 지속성은 아닌 것 같다. 한편, 영화 ‘여섯 번째 날’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기억을 새롭게 만들어진 몸에 주입하며, 기억이 유지되는 한에 있어서 죽은 사람과 새롭게 생성된 사람이 동일한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가? 나는 하루의 일에 대해서도 다수의 단편적인 기억들만을 갖는데, 동일성이 유지되려면 얼마나 많은 기억과 지속성이 필요한가?

만약 아무런 기준을 찾아낼 수 없다면, 어쩌면 ‘나는 나이다’라는 인격동일성에 대한 믿음은 편의를 위해 우리가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고 내 삶이란 과거와 현재에 지속되는 ‘나’의 삶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나들’의 삶은 아닐까?




[사설] 환경과 식생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시기 지구온난화는 국제적으로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문제다. 일부 선진국을 중심으로 적정 기준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제정한 교토의정서가 1997년 채택된 후, 지난 2015년에는 195개국이 참여하여 “지구 온도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까지 제한하도록 노력”하기로 한 파리기후협약을 맺었다. 우리나라도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2030년까지 예상배출량 대비 37%까지 감축하기로 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는 농업과 식량 및 식품 산업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25%를 차지한다고 보고했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육류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농업과 식량 및 식품 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인데, 그 중 절반은 육류, 특히 소고기 생산에서 나온다. 이처럼 육류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고기없는 월요일’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원래 ‘고기없는 월요일’은 2003년 미국 블룸버그 고등학교의 비만관리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다가 비틀즈 그룹 멤버인 폴 매카트니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회의(UNFCCC)에서 환경운동으로 제안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