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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인의 부끄러운 자화상 ‘에브리타임’

대학생 이용도 높은 에브리타임 게시판

익명성·폐쇄성 악용한 혐오성 게시물 범람

이용자 10명 중 8명 꼴로 불쾌감 느껴

혐오와 차별 막는 인권 관련 수업 강화해야

 

 

“중국놈들 다 자기 나라로 꺼졌으면 좋겠다”

“페미니스트는 외모, 몸매, 인성, 어느 것 하나 잘난 게 없다”

“빈곤층 지원 정책 짜증난다. 왜 잘사는 사람 등골을 빼먹나”

 

우리학교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업로드된 게시물 중 일부다. 지난 2011년 출시된 에브리타임은 시간표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 기능을 제공해 학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강의가 확산되면서 정보 공유를 위해 에브리타임을 찾는 학생들은 더욱 늘어났다. 올해 기준 에브리타임은 전국 400여 개 대학 516만 명이 이용하는 초대형 커뮤니티로 거듭났다. 

 

익명성·폐쇄성이 부메랑으로

‘익명성’은 에브리타임이 가진 강력한 장점이다. 학교 인증을 하지 않은 외부인은 게시판을 접속할 수 없기에 이곳은 온전히 학생만을 위한 공간으로 남는다. 이런 익명성과 폐쇄성은 학교의 관리와 제재를 받고 실명제로 운영되는 학내 공식 커뮤니티(비사광장)와는 대비되는 특징이다.

 

하지만 이러한 강력한 익명성과 폐쇄성은 불특정다수에 대한 익명의 혐오, 차별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8일 에브리타임 게시판에서 악성댓글에 시달린 대학생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알려져 대학가가 충격에 휩싸였던 바 있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A씨는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수차례 글을 올렸다. 그러자 일부 이용자들은 “티내지 말고 조용히 죽어라”, “죽고 싶다는 말만 하고 못 죽네” 등 악성댓글을 단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에브리타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청년참여연대는 지난해 5월 25일부터 6월 5일까지 대학생 325명을 대상으로 에브리타임 내 혐오성 게시물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참여자 325명 중 321명은 ‘에브리타임을 이용 중이다’라고 답했고 이용 목적은 시간표 사용(83.7%)과 정보 획득이(69.8%)이 가장 많았다(복수응답). 한편 에브리타임 이용 중 불쾌감을 느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248명(79.1%)이 불쾌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불쾌감을 느낀 이유는 막말과 비방(38.3%)이 가장 많았고, ▶소수자 혐오 ▶음란성 게시물 ▶정치적 편향성 ▶허위정보 등이 뒤를 이었다.

 

에브리타임에서 혐오를 조장하는 게시물 절반 가량이 여성혐오성 게시물이라는 조사도 나왔다.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는 지난해 4월부터 약 3개월간 25개 대학의 에브리타임 내 혐오표현을 수집했다. 그 결과 삭제되지 않은 혐오성 게시물 550여 건 중 거의 절반에 달하는 47%가 페미니스트에 대한 낙인과 비방, 여성혐오성 게시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절반은 인종, 성소수자, 학벌주의, 장애, 사회경제적 계급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게시글이었다. 유니브페미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특히 N번방 등 온라인 집단 성착취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글이 올라오거나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하는 글에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댓글이 달렸다”라고 설명했다.

 

‘공유지의 비극’에 빠진 에브리타임

모두에게 개방된 목초지가 있고, 그 근처에 소를 키우는 목동들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목초지는 아무런 사용 규칙이나 이용에 제한도 없으며 누군가로부터 관리되지도 않는다. 목동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 목초지에서만 소에게 풀을 먹이게 된다. 그렇다면 목초지는 어떻게 될까?

 

‘공유지의 비극’은 개방된 공간이 개인의 자율성만 믿고 방치되었을 경우 사회 전체의 이익에 어떤 해악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에브리타임은 자체적인 커뮤니티 이용규칙을 두고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행위,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행위 등 게시판을 악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에브리타임은 대학별 게시판 관리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 실효성에 의문이 뒤따른다. 에브리타임의 신고처리 시스템은 이용자의 신고를 기반으로 한 ‘자동 신고 시스템’이다. 일정 횟수 이상 신고가 누적되면 시스템이 사용자에게 제재를 가할 뿐 본사 측에서 각 게시물을 검토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에 혐오성 게시물을 지적한 이용자가 난데없이 게시판 이용을 정지당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B씨는 “특정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욕설을 보다못해 댓글로 몇 마디를 했을 뿐인데 며칠 뒤 게시판 사용을 한 달간 정지당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잘못된 주장이나 혐오성 표현을 일일이 지적했지만, 익명의 사용자들로부터 계속 괴롭힘을 당하고 매번 이유 없이 차단을 당하니 게시판 자체를 보지 않게 됐다”며 더 이상 에브리타임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에브리타임에서 올라오는 게시물이 학생들의 여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으로 작성된 게시물은 어떤 신빙성도 담보할 수 없으며, 추천을 10개만 받아도 HOT 게시판으로 옮겨지는 특성상 특정 이용자들의 성향이 과대대표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B씨는 “하루에 올라오는 게시물을 모두 더해봤자 전체 학생 수에 비하면 극히 작은 수에 불과하다”라며 “몇몇 이용자들의 행태만을 보고 학생 전체의 여론인 양 오해해서는 곤란하다”라고 덧붙였다.

 

혐오, 차별 문제에 대한 대학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을

학교 차원에서 혐오, 차별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대학생 자치기구와 함께 진행한 대학 인권현안 토론회에서 각 토론자들은 학내의 혐오와 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톨릭대학교 인권동아리 ‘가다’ 소속 최아현 씨는 “지난 2012년 중앙대학교에 처음으로 인권센터가 설립된 이후 현재 전국 82개 대학에 인권센터가 설립됐다”면서도 “인권센터가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긴 하나 설치 여부가 전적으로 대학 자율에 맡겨져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아현 씨는 이어 “대학마다 인권센터의 규모와 형태가 다르다보니 배당받는 예산 역시 천차만별이다”라며 “대학인권센터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그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부산대학교 총학생회 임원 이준영 씨는 대학이 학내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해 인권센터에 대한 홍보와 예산을 늘리고, 인권 관련 수업을 개설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영 씨는 “의무가 아닌 인권 관련 교육이나 비교과 프로그램 등에 학생들이 참여할 동기가 부족하다”면서 “교양필수 과목 중 일부에서 ‘인권’을 필수적으로 다루도록 한다면 학생들의 반감을 사지 않고 인권 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