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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이해준 감독의 ‘김씨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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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에서 표류한 선원 이야기로 유명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 로빈슨은 29년을 섬에서 홀로 지냈다. 필자가 소개할 영화 ‘김씨표류기’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식인종만 간간히 방문하는 그런 외딴섬에서의 거창한 표류담은 아니다. 대신 대도시 서울 안에서 겪는 새로운 방식의 표류담이다. 

 

‘김씨표류기’에는 2명의 표류자가 등장한다. 표류자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도시 한가운데 손바닥만 한 무인도에서, 그리고 한강뷰가 보이는 아파트 방안에서 표류하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구조조정, 빚, 재취업 실패로 한강에 투신한 남자 김씨가 실수로 한강 다리 아래 무인도 밤섬에 표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남자 김씨는 원래의 계획대로 죽으려고 시도하기도 하고, 반대로 살기 위해 도움을 청하기도 하다가 서서히 섬 생활에 익숙해진다. 처음 모래사장에 ‘HELP’를 썼던 그는 섬의 생존방식을 터득하고 버려진 오리배에 터전을 잡고 난 후 ‘HELLO’를 쓴다. 밤섬은 도시생활의 경쟁에서 떠밀린 그가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땅이 된 것이다.

 

남자 김씨의 표류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한강변 아파트에 사는 여자 김씨이다. 함께 사는 부모와의 소통도 거부하는 여자 김씨는 자신의 방안에서 표류하고 있다. 이마의 상처는 여자 김씨 역시 타인과의 관계에 많은 상처를 받아 사회생활을 이어갈 힘을 잃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자 김씨는 지저분한 방의 옷장 안에서 뽁뽁이를 이불삼아 잠을 잔다. 그만큼 그녀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이 크기는 작디 작다.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인 여자 김씨는 민방위 훈련 때 사람들이 사라진 도시를 보다가 밤섬에서 죽으려고 하는 남자 김씨의 표류를 알게 된다. 그 후 이 둘은 망원경과 빈병에 담은 쪽지로 소통을 시작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한 발짝을 디딜 용기와 희망을 품게 된다. 남자 김씨가 품은 희망의 상징은 짜장면(정확하게는 짜파게티)을 만드는 것인데, 그가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이 영화를 보면서 위로와 희망을 받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짜장면을 향한 열망은 너나없이 생기리라는 점이다. 

 

‘김씨 표류기’가 2009년도 개봉되었을 때 관객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2000년에 개봉한 ‘캐스트 어웨이’를 연상시키는 ‘표류’라는 주제와 코믹한 영화분위기로 인해 가벼운 코미디 영화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씨표류기’는 이후 해외에서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고,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강한 임팩트를 주는 블록버스터에 질렸을 때, 삶을 힘들어했던 사람이 일어서는 것을 보며 같이 위로받고 싶을 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입맛을 잃어서 힘들 때 이 영화를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