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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세상] 기부와 사면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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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통 큰 기부’에 떠오르는 사면론

죄도, 세금도 법대로 하면 그만

 

대구시립미술관에 대구·경북에 연고가 있는 화가 8명의 작품 21점이 들어왔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들이 1조 원에 이르는 소장품을 기증한 덕분이다. 대구미술관과 시민에게는 경사스러운 일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기증과 함께 다수 언론은 ‘통 큰 기부’라며 칭송했고, 이재용 부회장 사면론이 나왔다. 상속세를 줄이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미술품을 기증한다고 상속세는 줄어들지 않는다. 1조 원에 판매하더라도 절반은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산이 워낙 막대해 1조 원을 줄인다고 세율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왜 기증을 했을까.

 

이미 성과를 이룬 것 같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는 지난 4월 26일 ‘이재용 부회장 사면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여론조사업체인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 의뢰로 지난 4월 24~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에게 조사한 결과,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된다'는 응답이 69.4%, '사면하면 안된다' 23.2%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1조 원을 기증한 재계 총수를 감옥에 계속 둬서 되겠냐는 심리다. 반칙·불공정에 민감한 Z세대라면 달리 생각해 볼 일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기부’는 박수받을 일이다. 공정한 대한민국을 바라는 20대라면 모든 기부에 박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부는 다른 의미로 많이 소모됐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학은 정원외 방식의 기여입학제 도입 건의를 여러 번 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 논란이 일자, 차익을 기부하겠다는 말로 정치판에 돌아왔다. 결국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했고, 국회의원직을 승계했다. 정부 경제 정책을 총괄했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주택 임대료 인상 폭을 5% 제한하는 법 시행 전 보증금을 14.1% 올려 계약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전 정책실장은 한성대 교수 복직을 신청하면서 남은 급여를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로 했다. 그들은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고, 원하는 위치로 복귀할 수 있다. 사회적 책임을 무시한 이들을 비판한다면, 범죄자 비판은 당연한 일이다.

 

‘기부’한다고 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대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에 징역형을 선고한 이유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하며 회삿돈으로 뇌물 86억8천만 원을 건넸기 때문이다. 뇌물을 건네 자본주의 사회의 정상적인 경쟁을 흐린 사람이 돈을 써서 법을 우회하다니. 회삿돈을 부정하게 썼으니, 가장 기분 나쁜 이들은 삼성에서 일하는 이들일 것이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직원들의 기부금 내역을 무단 열람해 노동조합 와해와 감시에 쓰기도 했다.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결식아동과 제3세계 아동을 보고 마음이 아파 월 1만 원씩 기부한다. 기부금 냈다고 다른 범죄 행위에 대한 사면을 바라는 사람이 있었던가. 재벌 총수에게 더 엄한 처벌을 하자는 주장을 할 필요도 없다. 죄를 저지른 만큼 처벌받고, 법이 정한 만큼 세금을 내면 된다. 예외가 있는 공정(公正)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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