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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집단의 진료거부, 공공의료 확대 계기로 삼아야

의료공공성 증대는 서울과 지방의 격차 해소 위해 필수적

한국 의사, OECD 평균 대비 71%에 불과…확충 시급

 

공공의대 의사에 ‘현대판 음서제’ 낙인 부당

 

시민이 직접 의료제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집단진료거부가 멈추었다. 전공의들의 파업은 8월 21일 시작되어 얼마 전에야 끝이 났다. 18일 간의 파업이었다. 국가시험 응시를 거부해오던 의대 4학년생들도 13일부로 집단행동을 중단키로 했다. 의사들이 집단 진료거부의 이유로 내세웠던 네 가지 이유 중에는 ‘공공의대 신설 반대’와 ‘의사정원 확대 반대’가 있었다.

 

● ‘전교 1등’ 의사들의 언어도단

의협을 비롯한 전공의, 의대생들은 의사 숫자가 적지 않다는 주장을 시작으로 숫자가 적어도 진료량이 많아서 괜찮다, 혹은 증가율이 높아 2028년에 OECD 평균을 추월한다는 근거를 내세워 공공의료 정책에 반기를 들어왔다. 하지만 이는 모두 틀린 주장이다.

OECD 국가의 평균 의사수는 인구 1천 명당 3.5명인데 우리나라는 2.3명에 불과하다. 71% 밖에 안 되는 것이다. 또 2017년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의과대학 졸업자수는 OECD 평균이 13.1명인데 비해 한국은 7.3명으로 58% 수준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의사수가 적지 않다거나 의사 증가율이 가파르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의협의 주장은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에 내놓은 자료에 근거한다. 이 연구소에서는 ‘OECD 의사 증가율은 0.5%인데 비해 한국 의사증가율은 3.1%’라는 수치를 앞세워 2028년에 한국의 의사 수는 OECD 평균을 추월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은 한 해에 3천58명씩 의사가 배출되어 분자가 계속 늘어난다. 의사증가율이 2008년에는 3.1%였던 것이 사실일지라도 2020년에는 2.0%인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OECD 국가들은 이미 의대정원을 늘린 탓에 지금 OECD 의사증가율은 평균 2.0%다. 이런 상태로는 영원히 OECD 평균에 도달하지 못한다. 의사증가율의 분자가 매년 등차수열로 늘어난다는 간단한 계산을 ‘전교 1등’들이 왜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또 의협은 의사 1인당 환자를 커버하는 숫자가 많으므로, 즉 진료량이 많기 때문에 한국은 의사수가 적어도 별 탈이 없다고 주장한다. OECD 평균에 의하면 의사 1인의 진료횟수는 7.5회이고 우리나라는 16.6회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2.2배쯤 환자를 많이 보는 셈이다. 그러나 OECD는 이 진료횟수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행위별 수가제로 과잉의료의 위험이 있다고 특별히 부연 설명까지 붙여놓았다. 즉 한국은 진료를 많이 하면 할수록 병원이나 의사가 돈을 많이 버는 구조라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식 진료는 다른 나라처럼 15분 진료가 아니라 ‘3분 진료’라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지역 간 의료격차다. 우리나라 시군구 240개 지역 중 응급의료센터에 30분 내로 도착하지 못하는 지역이 있는 시군구가 99개다. 이 지역에서 교통사고 등으로 중증외상이 생기면 사망가능성이 급증한다. 분만센터가 없는 지역도 60개다. 가장 큰 문제는 뇌졸중, 심장마비, 중증외상의 3대 중증 필수진료다. 지방에서 이런 중증환자가 발생하면 골든타임 내에 병원으로 도달하기 어렵다. 결국 지역거점병원과 지역의서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한편 의사들은 공공의대 학생을 시민단체 추천으로 뽑으면 부실 의대가 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정한 추천위원회를 꾸리겠다는 구상을 두고 ‘공부 못하는 의사’, ‘현대판 음서제’ 운운하는 것은 악의적인 왜곡이다. 일례로, 대구가톨릭대학교 의대는 지역의 학교장이나 도지사의 추천으로 의대생 일부를 선발했지만 그 학교 출신 의사들이 엉망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까지 비우는 초강수를 두고 환자들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면서 세계의사회(WMA) 윤리강령을 위반하고, 진료현장에 복귀하면서 빈말로라도 환자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 의사들을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전교 1등 의사들보다는 해당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 중에서 학업성적과 ‘인성’이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시민이 어디 나 혼자일까.

 

● 진정한 공공의료를 위해

의사들의 주장은 언제나 ‘기승전-수가’로 향한다. 흉부외과 지원자가 적은 것도, 의사들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기를 거부하는 이유도 수가 탓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도 지방 의료원 소속 의사 연봉은 3억원, 아니 5억원인 경우도 있다. 얼마를 더 주어야 한단 말인가? 실제로 의사들의 요구에 따라 흉부외과 수가는 2009년에 이미 100%가 올랐다. 그러나 막상 흉부외과의 진료환경 개선을 위해 쓰인 돈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인상된 수가의 나머지는 병원 주머니로 들어갔다.

물론 정부안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8월 13일 발표된 정부안을 제일 먼저 비판한 곳이 우리단체였다. 정부는 공공의대 정원으로 겨우 49명을 배정했을 뿐이고, 그것조차 이미 실패한 제도로 평가받는 의학전문대학원(4+4년제)과 유사한 형식이었다. 심지어 늘리기로 한 정원 400명 중 300명은 사립의대에 의존하고, 이들을 10년간 지역에 근무를 시키겠다고 했다. 10년이면 전문의가 될 때까지의 수련기간 5년~7년을 빼면 지방에서 실질적으로 근무하는 기간이 3~5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지역과 중앙의 격차를 해소하려면 공공병원과 공공의료 인력 확충이 필수적이다. 농어촌 지역은 인구가 적은 탓에 돈을 벌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사립병원들이 구태여 지방으로 이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지방에는 이윤보다는 공공성을 우선하는 국공립병원을 설립해야 하고, 지역에서 복무하는 공공의사들을 새로이 선발해야 한다. 또 확충된 지방공공병원이 국립대학병원과 연계될 수 있도록 네트워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보건의료노조와 시민단체들은 전체 병원의 10%인 공공병원을, OECD 평균 70%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과 미국 수준인 30%까지 늘리고 공공의사제도를 도입해 의사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한 몸부림보다는 위력과시에 가까워보였던 의사들의 진료거부는 시민들에게 ‘의사들을 어떻게 시민에게 봉사하도록 할 것인가’를 숙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엘리트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서민들을 위한 의사, 시민을 위한 병원과 의료제도가 필요할 뿐이다. 따라서 의사들의 요구에 따라 구성된 ‘의-정 협의체’에서 의료제도나 의사정원 문제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시민이 직접 의료제도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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