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소재 지자체, 소멸 고위험 지역 상위권 차지
가파른 인구 감소세에 청년인구 유출도 심각
대구시-경북도, 행정통합으로 활로 모색하지만
“독단적이고 성급한 추진 안돼” 비판 목소리도
도시에 살던 A씨 부부는 아이를 깨끗한 환경에서 기르기 위해 무턱대고 귀농길에 올랐다. 생계를 위해 자두 농사를 시작했지만 아직 일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크다. 하지만 농사보다 힘든 것은 열악한 지역 인프라다. 아이는 시골로 이사를 온 이후로 아직 친구가 없다. 또래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한 탓이다. 아이를 보낼 유치원은 지역에 단 한 곳뿐인데, 그나마도 3~4명 남짓한 매우 작은 규모다. 장을 보려고 해도 가장 가까운 마트가 집에서 30분이나 걸린다. 부부는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 오히려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인구
경북 의성군에 거주하는 어느 부부의 실제 이야기다. 마늘과 사과, 그리고 ‘한국 컬링의 성지’로 유명한 의성군은 지난 2014년 이래 6년 연속으로 전국 243개 지자체 중 인구 소멸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혔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하는 ‘지역소멸위험지수’는 소멸위험도를 ▶소멸위험 매우 낮음(1.5이상) ▶소멸위험 보통(1.0~1.5미만) ▶주의단계(0.5~1.0 미만) ▶소멸위험 진입단계(0.2~0.5 미만) ▶소멸고위험 지역(0.2 미만)의 5단계 등급으로 나눈다. 2020년 5월 기준 의성의 소멸위험지수는 0.133으로, 경북 군위군과 함께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2011년 5만7천여 명이었던 의성군의 인구는 매년 5백여 명 가까이 감소하여 지난해를 기준으로 5만1천 명대로 감소했다. 이러한 추이가 계속된다면 인구 5만 명 선을 유지하기가 버거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구·경북 전체를 살펴봐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2020년 5월을 기준으로 대구의 소멸위험지수는 0.755로 나타나 ‘주의단계’로 분류됐다. 지난 2011년 250만 명에 달했던 대구의 인구수는 2018년부터 가파르게 하락, 지난해에는 인구가 241만 명대까지 떨어졌다. 통계청이 지난 2월 24일 발표한 ‘2020년 출생·사망통계’에 따르면 대구의 출생아 수는 1만1천200명으로 전년보다 15.3% 줄었고, 합계출산율 또한 0.81명으로 13.3% 감소했다.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 감소세가 나란히 전국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전국 소멸고위험 지역 상위 10개 지자체 중 군위군, 의성군, 청송군, 영양군, 봉화군, 청도군 등 6곳이 이름을 올린 경북은 인구소멸 위험에 직면했다. 전국 소멸고위험 지역 중 경북 소재 지자체가 차지하는 비중만 21%, 경북 전체를 놓고 봐도 소멸위험 진입단계(0.472)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경북의 인구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 1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의 인구는 2019년 대비 2만여 명이 줄어든 263만9천여 명으로 조사됐다. 또 경북의 출생아 수는 1만2천900명으로 지난해보다 1천600명이 줄어든 반면, 사망자는 2만2천800명에 달해 9천900명의 인구가 자연감소(-9.9%)했다. 경북의 인구감소 비율이 우리나라 전체 인구 감소율(3만2천700명)의 30%에 해당하는 셈이다.
청년인구(15세~39세) 감소세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경북의 청년인구는 69만2천여 명으로 조사됐는데, 2010년 89만9천여 명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20만 명 가까이 줄었다. 대구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 2010년 92만8천여 명에 달했던 청년 인구수는 지난해 73만5천여 명까지 하락했다. 10년 사이에 대구·경북에서만 40만 명 가까운 청년인구가 줄어든 것이다.
● 대구·경북 입 맞춰 “뭉치자”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 자연 감소 추세에 돌입했다. 지난 2018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0.98명으로 추락했고, 지난해에는 이보다 낮은 0.84명을 기록했다. 또 2020년 잠정 증가인구는 27만 명에 불과한 반면, 사망자 수는 30만 명을 넘겼다. 합계출산율이 0명대로 주저앉은 지 2년 만에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어서는 이른바 ‘데드크로스’이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장래인구특별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2028년 5천194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이 같은 흐름은 소멸위험이 큰 대구·경북에 특히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는 최근 들어 ‘대구경북행정통합’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양 지자체는 지난 2020년 9월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위)’를 출범시키고 현재까지 세 차례의 시도민 토론회를 진행하는 등 행정통합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공론위는 ▶강한 지역적·역사적 동질성 ▶1981년 대구광역시 분리 이후 기대에 못 미치는 행정분리 성적 ▶수도권-지방 불균형 악화 등을 이유로 행정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981년 대구광역시 분리 이후 현재까지 전국에서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는 점과, 대구·경북의 GRDP(지역 내 총생산) 비중이 1985년 11.9%에서 2018년 8.7%로 하락하였다는 점, 수도권-비수도권의 GRDP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행정통합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공론위의 입장이다. 또한 행정통합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면 인구와 GRDP 측면에서 수도권에 필적하는 강력한 지자체로 부상할 수 있고, 행정서비스 통합을 바탕으로 시도민의 정주여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도 행정통합론의 주된 근거다. 공론위가 (주)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월 16일부터 19일까지 대구·경북의 18세 이상 성인남녀 2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행정통합 찬성 응답이 40.2%, 반대 응답이 38.8%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대구시민은 찬성이 39.7%, 반대 40.8%로 반대의견이 소폭 높았지만 경북도민은 찬성 40.6%, 반대 36.8%로 조사돼 경북도민이 대구시민에 비해 행정통합론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행정통합의 실현까지는 갈 길이 멀다. 행정통합에 대한 여론은 찬반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인데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가 통합을 전제로 한 밀어붙이기식 추진을 감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도의회 김성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 도정질문에서 “이철우 도지사가 독단적이고 성급하게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며 “행정통합이 되면 수도권 집중과 대구 집중의 이중적인 쏠림 현상으로 경북도만 힘들어질 것”이라고 질타했다. 또한 대구경실련은 지난해 11월 성명을 내고 “행정통합을 실현하려면 2021년 6월 이전에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시도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행정통합에 대한 시도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론화 등 논의 일정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