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화된 사학혁신 추진방안
1천만 원 이상 배임·횡령한 임원의 취임승인 취소
설립자 친족 등의 개방이사 선임 배제
학교법인 임원 인적사항 공개 등 담겨
교육부 장관, “사학 공공성 강화 위해 사학혁신 차질 없이 추진”
사학 공공성 강화 가능할까
빈틈 많은 사학법, 사학비리 원흉으로 지목
2005년, 공공성 강화한 개정안 통과됐지만
사학재단과 야당 반발로 2007년 대폭 손질
향후 논의 과정에서 진통 예상
● 사학혁신 후속조치, 어떤 내용 담겼나
9월 22일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교육신뢰회복을 위한 사학혁신 추진방안’의 후속조치로 ‘사립학교법(이하 사학법) 시행령’ 등 3개 법령에 대한 제·개정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제·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1천만 원 이상을 배임·횡령한 사립학교 임원은 시정명령 없이 임원취임승인을 취소하도록 하고, 이사회 회의록 공개 기간은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해 이사회 결정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한편, 설립자 및 설립자의 친족, 기존 임원 및 학교 총장 등의 개방이사 선임을 배제하도록 조치했다. 이밖에도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대한 특례규칙’을 개정하여 용도가 지정되지 않은 기부금을 교비회계로만 세입처리할 수 있도록 했고, ‘학교법인 임원의 인적사항 공개 등에 관한 고시’를 마련해 학교법인 임원의 인적사항을 공개할 시 해당 임원이 친족이사인지 여부를 공개하도록 규정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교육부는 사학혁신 추진방안 후속조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남아있는 법률 개정 과제들도 국회에서 조속히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사학의 공공성과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학혁신을 차질 없이 추진하여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 신뢰를 회복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기부터 대학 공공성 강화를 통해 사학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학 공공성과 관련된 공약은 곳곳에서 암초에 걸려 줄줄이 축소되거나 무산되는 상황을 면치 못했다. 이처럼 사학개혁 추진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부가 돌연 사학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 ‘개악’ 거듭해 온 사학법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2월 공개한 국내 339개 사립대학에 대한 감사결과보고서(2008~2019년)에 따르면 회계부정 등에 의한 사학비리 적발 건수는 약 4천528건이었고 액수는 4천177억에 달했다. 우리나라 대학 중 사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80%를 웃돌고 매년 7조 원 이상의 세금이 투입되고 있는 만큼 대학 공공성 강화와 투명성 제고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립대학의 구조적 문제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사학법은 사립학교 비리를 근절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학 비리를 부추기는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립학교가 비리의 온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학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해방 이후 나날이 치솟고 있었던 국민들의 교육수요를 공교육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이승만 정권은 사립학교 설립자들을 토지개혁 대상에서 제외해주겠다는 유인책을 폈고, 이 시기 민간자본에 의해 사립학교가 대거 설립됐다. 이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사학법을 제정하여 사립학교 법인 이사진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학교 운영권을 학교장에게 집중시키도록 하여 정권에 의한 사학 통제를 강화했다. 5공 출범을 앞둔 1981년에 이르러서는 사학재단의 족벌경영 등 사학비리가 사회문제로 되었는데, 당시 군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는 이사장의 배우자 및 직계존속이 학교법인의 총장 및 학교장으로 취임할 수 없도록 사학법을 개정했다.
이처럼 정권의 필요에 의해 크고 작은 개정을 반복해 온 사립학교법은 민주화 이후 오히려 후퇴하기 시작한다. 1990년 노태우 정부 시절 사학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 개정된 사학법은 교직원 임면권을 재단으로 넘기고 이사장의 직계존비속 및 배우자를 총장 및 학장에 임명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규정을 폐지하는 한편, 친인척 이사의 선임비율을 확대하는 등 사학재단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사학비리가 나날이 심각해지자 1999년 김대중 정부는 ‘3대 교육개혁안’의 일환으로 사립대학 법인이사의 1/3을 공익위원에게 할당하는 사학법 개정안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나 이러한 개정 시도는 끝내 좌절되었다.
2000년대 들어 사학법이 사학비리를 구조적으로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지난 2005년, 현 집권여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개방이사제 도입과 대학평의원회 설치, 이사장 친족의 학교장 임명 금지를 골자로 한 사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사학재단과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시행 1년만인 2007년, 개방이사를 이사 정수의 1/4로 줄이고 대학평의원회를 자문기구 수준으로 축소하는 등 2005년보다 대폭 후퇴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현재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다.
● ‘문제적 사학법’ 개정 가능성은
이처럼 사학법은 국가권력의 필요와 이해 당사자 간의 알력다툼으로 인해 ‘누더기법’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사학법은 1963년 제정 당시부터 줄곧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함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하는 것이 그 취지였으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대학이 사실상 공교육에 준하는 지위를 차지하는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사학비리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공교육의 왜곡과 교육의 질적 하락을 불러올 우려가 깊다. 현행 사학법의 빈틈을 메워 실효성 있는 사학법으로 재편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2007년 이후 사학법의 공공성 강화를 시도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줄줄이 폐기됐다. 지난 2011년에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교육부 장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학교 운영 파행 등에 책임이 있는 종전 재단 측 인사가 이사로 선임될 경우 그 비율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사학법 개정안의 발의되었던 바 있다. 또한 2014년에는 임원 선임에 대한 관할청의 승인을 엄격하게 하고 비리 당사자가 임원이 되었을 경우 임원 승인을 취소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률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법인 개방이사와 감사, 학교장 후보자 등을 직접 추천할 권한을 대학평의원회에 부여하여 대학평의원회를 실질적인 의결기구화하는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빛을 보지는 못했다. 아울러 지난 9월 29일과 10월 5일에도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으나 국회 통과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사학혁신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시행령 등 행정입법 과제를 우선 추진하고 국회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조속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2005년 당시 사립대학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힌 전례에 비추어 봤을 때, 사립대학의 자율성 침해를 둘러싸고 향후 입법 과정에서 극심한 대립이 예상된다. 여기에 사학개혁을 강력히 요구해왔던 단체들의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변수다. 교육부가 내놓은 방안은 사립대학 문제의 핵심을 짚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는 성명을 통해 “교육부 스스로 고심한 혁신 방안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물론 수용 내용도 매우 소극적이어서 교육부가 관련법을 통과시키고 제대로 된 시행령을 만들 의지가 있는지 우려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