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자취방을 계약한다. 그러나 그 설렘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벌레가 나타나거나 참기 힘든 생활 소음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함께 가전제품 결함으로 인한 불편함을 겪는 사례도 있다. 실제로 우리학교 동문에서 자취 중인 A씨(언론영상학·3)는 “하루에 20회 정도 냉장고 내부에서 터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 임대인에게 교체를 요청했지만 ‘새로 사주기는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 계약 당시엔 발견하지 못한 하자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조정 신청이 들어오는 유형은 ▲주택보증금 반환(7 1.3%)이 가장 많았으며 ▲유지 수선의 의무(8.0%) ▲계약이행 해석(6.4%) ▲손해배상(6.0%)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짧은 계약 과정과 제한된 현장 확인으로 인한 정보 비대칭에서 비롯된다. 벽 내부 배관, 전기 배선, 해충 문제처럼 즉시 드러나지 않는 하자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비슷한 예시로 우리학교 남문에 자취 중인 B씨(국제통상학·4) 역시 계약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벌레 문제로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낮에 활동하지 않는 바퀴벌레 특성상, 계약 당시에는 문제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인은 집을 계약하기 전 주요 하자에 관해 설명할 의무를 갖는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하자로 볼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부족한 실정이다. 다만 국토교통부 하자 판정 사례에 따르면 ▲기능 불량 ▲들뜸 및 탈락 ▲균열 ▲결로 등이 주요 하자로 인정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벌레 출몰, 방음 문제 역시 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할 경우 하자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민법 제623조에 따라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 하자 발생 시 해야할 일은?
하자를 발견했다면 임대인에게 정식으로 보수를 요구하고, 이를 문자 메시지나 문서로 증거를 남겨야 한다. 임대인이 성실히 보수에 나선다면 계약 해지는 어렵지만, 임대료 감액 등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
임대인이 적극적으로 보수했음에도 하자가 반복적으로 발생해 여전히 거주가 불가능하다면 민법 제623조에 근거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반대로 임대인이 보수에 소극적이거나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면, 임차인이 직접 수리 후 비용을 청구하면 된다. 임대인에게는 수선 의무가 있어 임차인의 귀책 여부와 상관없이 인정된다.
만약 갈등이 계속된다면 민법 제390조에 의해 손해배상 청구와 계약 해지 요구가 가능하다. 하자의 정도가 심각해 수리가 불가능하다면, 임차인이 해지를 따로 하지 않아도 임대차 계약은 자동으로 해지된다.
계약 해지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전에는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와 같은 기관에 도움을 받거나 변호사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이 과정에서는 하자가 생활에 끼친 영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므로,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야 한다. 다만 소송은 최후의 수단이며, 민사소송은 1심 선고까지 평균 약 10개월이 소요되고 변호사 수임료 등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 손해배상 청구를 하더라도 원하는 수준의 배상이 보장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따라서 당사자 간 합의나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한 조정 절차로 해결하는 방향이 우선이다. 소송은 충분한 증거 확보가 필요하며, 전문가와 상담을 거친 뒤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 계약 전 예방 방법
하자는 사후 대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전 예방이 피해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계약 전 체크리스트를 준비할 것을 권한다. 단순히 수압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받아 싱크대 호스 상태를 살펴보고, 제공되는 가전이 정상 작동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화장실에서는 세면대, 샤워기, 변기를 동시에 작동시켜 수압을 점검하는 것이 좋다. 또한 계약 전 집 곳곳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을 추천한다.
계약서에 특약 사항을 기재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제공된 가전제품이 작동 불능 시 임대인이 교체 및 수리한다’, ‘하자의 정도가 심각할 시, 계약은 무효로 한다’와 같은 조건을 넣는다면 분쟁 시 임차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계약 경험이 적고 법률 용어에도 익숙하지 않아 특약을 작성하기가 쉽지 않다. 이때, ‘서울주거상담’과 같은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임대계약서 체크리스트 또는 표준계약서를 참고하는 방법이 있다. 직접 요구하기 어렵다면 중개인을 통해 특약 반영을 요청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법은 중개인에게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 제도적 지원 창구 활용하기
피해 발생 시 임차인이 의지할 수 있는 제도적 창구도 존재한다. 우선 임대차 분쟁 조정위원회를 통해 계약 해지나 보증금 반환 등 임대차 분쟁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조정받을 수 있다. 또한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는 무료 법률 상담과 소송 지원을 제공하고 있어 실질적인 대응도 가능하다. 지역 차원에서 지원하는 창구도 마련되어 있다. 달서구 청년센터는 ‘청년고민톡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주거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생활 관련 상담을 돕는다.
● 예방과 제도적 활용이 열쇠
하자 미고지로 인한 피해는 개인의 불운이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구조적 문제이다. 계약 전 철저한 확인과 기록 습관, 문제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이 더 큰 피해를 막는 방안이다. 김진엽(도시계획학) 교수는 “원룸은 단순한 계약 공간 임대가 아니라 법적 권리와 의무가 수반되는 중요한 약정”이라며, “혼자 해결하려 하기보다 전문가 상담을 통해 관련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 임대인: 계약에 따라 돈을 받고 물건을 빌려준 사람
* 임차인: 계약에 따라 돈을 주고 물건을 빌려 쓰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