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지역의사제가 꼭 필요한 이유는?

  • 등록 2025.12.10 00: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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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 작년 3월 23일, ‘의-정 대립 속에 위기의 시민 생명을 지키고 실종된 공공의료 찾기 대구시민 행진의 날’ 당시 현장이다. 사진은 장지혁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의 ‘공공의료 탑 쌓기’(좌측)와 당시 정부의 의료개혁을 반대하는 시민(우측)의 모습. ©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 지역의사제란 무엇인가?

마침내 지난 12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지역의사제’ 관련 법안이 통과되었다. 지역의사제란 지역의 심각한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신입생 중 일부를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선발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업료, 교재비, 기숙사비 등을 지원하는 대신, 졸업 후 10년 동안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하게 하는 제도다. 졸업 후 임상 수련을 받는 경우 전문 과목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역의 의료 수요를 고려해 지정할 수 있어 필수 의료 영역의 의사 확보에도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지역에서의 의무 복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시정 명령과 면허 정지를 거쳐 의사 면허취소까지 가능하다. 지역의사제는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추진되었으나 무산되었고 윤석열 정부 시절인 지난 2023년에도 관련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의사 집단의 강력한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 붕괴 직전의 지역 의료

대한민국의 지역 의료는 붕괴 직전이다. 진통이 시작되어도 1시간 이내 분만실에 도착하기 힘든 ‘분만 취약지’가 전국 시군구 2백50곳 중 1백8곳에 이른다. 의료 취약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산모 10명 중 8명은 원정 출산에 나서야 하는 실정이다. 제때 치료를 받았다면 사망하지 않았을 환자를 뜻하는 ‘치료 가능 사망자’도 서울은 10만 명당 39명에 그치지만, 경상북도는 48명에 달한다. 1시간 내 응급실 이용률을 보면 경상북도가 53.4%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최악의 의료 취약지로 꼽히는 봉화, 영양, 청송 등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는 병원도, 의사도 찾기 어렵다. 실제로 경상북도의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1.39명에 불과하지만, 서울은 3.5명에 달한다. 생명과 직결되는 소위 ‘필수 의료 영역’의 인력 격차는 더 심각하다. 서울에는 인구 1천 명당 필수 의료 전문의가 3.01명인데 비해, 경상북도는 0.36명 수준에 머물러 지역 간 의료 인력 격차가 약 8배에 이른다.

 

● 지역 간 의료 격차의 근본 원인

지역의 의사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지역의 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병원 설립이나 공공의료 인력 양성 같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보다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해 왔다. 농어촌의 ‘무의촌’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1979년, 군의관을 배치한 후 남은 의사 인력을 공중보건의로 의료 취약지에 파견했다. 의대를 갓 졸업해 임상 경험이 거의 없는 의사가 지난 40여 년간 지역 의료 취약지의 최일선을 지켜온 것이다. 최근에는 공중보건의 충원율마저 크게 줄어 2021년 87.4%에서 2025년 53.2%로 떨어졌다. 결국 한 명의 공중보건의가 여러 읍면의 보건지소를 순환하며 근무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지역 의료 공백의 근본적인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이 달린 의료마저 민간에 맡겨왔기 때문이다. 1977년 우리나라에도 의료 보험이 도입되면서 의료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국가는 공공의료 확충을 포기했고 결국 의료의 주도권은 민간 병원 중심의 시장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윤 추구의 무한 경쟁에 돌입한 민간 병원들이 수익이 많은 대도시를 선호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지역을 외면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공공병원은 전체 병원의 약 5%에 불과하다. 평균 57%의 공공병원이 있는 OECD 국가와도 대비된다. 지역 주민이 많이 이용하는 지방의료원은 일제강점기 43곳에서 그동안 단 하나도 늘지 않았다. 지역의사제는 이러한 우리의 극심한 공공의료 결핍이 초래한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의 공백 상황에서 나온 ‘응급 처방’일지도 모른다.

 

● 이미 많은 국가에서 시행 중인 지역의사제

지역의 의사 부족 문제는 우리나라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다. 독일, 대만, 일본 등 이미 많은 국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의사제를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07년, 일본판 지역의사제인 ‘지역 정원제’를 도입했다. 80개 의대 중 71개가 이 제도를 시행 중이며 점차 지역 정원제의 비중을 확대해 지금은 전체 의대 정원의 18%에 달한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에 필요한 의사의 수를 지역 보건 계획에 따라 미리 정하고 교육과 수련을 가까운 의대에 위탁한다. 선발된 의대생의 교육비와 기숙사비 등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며 졸업 후에는 9년간 지역에서 의무 복무를 한다. 지역 정원제로 선발되는 1천8백8명 중 4백85명은 졸업 후 전공할 전문 과목까지 미리 정한 뒤에 선발해 필수 의료 인력 확보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의무 복무 이행률은 매우 높은데, 돗토리현의 경우 그동안 지역 정원제로 배출된 2백19명의 의사 중 의무 복무 포기자는 45명에 불과했다.

 

● 지역의사제 관련 법적 논쟁 및 효과성 우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역의 환자들이 최소한의 의료서비스에 접근하게 하는 필수적이고 시급한 제도라며 지역의사제를 환영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전국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5.3%가 지역의사제 도입에 찬성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헌법상 보장된 ‘의사들의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의 소지가 있다’라며 지역의사제 도입에 반대했다. 그러나 지역의사제는 졸업 후 의무 복무를 충분히 인지한 후 선택하는 입학 전형이기에 위헌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아울러 의사의 거주 지역 선택의 권리보다 의사가 부족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이 헌법상 더 중요한 권리라 할 수 있다.

 

10년간 지역에서 의무 복무 후 의사들이 서울, 수도권으로 옮겨가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지역 중학교 및 고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선발하므로 의무 복무 후 지역에 남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동안 시행해 온 의대의 지역인재전형에서도 지역 출신 학생이 서울 수도권 출신 학생보다 지역에 정착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지역 정착을 위한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지역에서도 적절한 경력과 전문성을 쌓을 수 있게 지원하며, 지역 정착 시 다양한 우대조치를 제공한다면 의무 복무 후 많은 의사가 지역에 정착할 것이다.

 

● 지역 의료를 되살리려면

지역의사제가 본격 시행되면 몇 명을 뽑을 것인가 보다 어떤 학생을 뽑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의 5~10%를 지역의사제로 뽑고 있는 독일에서는 대입 시험인 ‘아비투어(Abitur)’ 성적만으로 합격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학업 역량을 포함해 지역 의료에 헌신할 가능성을 보기 위해 지역 고등학교 출신 여부, 의료 봉사 경험 등 지원자의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미국 UC 데이비스 의대는 아메리카 원주민 학생을 선발해 교육한 후 원주민 지역으로 다시 보내고 있다.

 

지역의사제 전형에서만큼은 내신 성적이나 수능 성적으로만 선발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 실제로 의료 취약지에 거주하며 지역 주민의 특성을 잘 아는 학생들도 뽑힐 수 있도록 다양한 선발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공의대 설립도 서둘러야 한다. 명실상부한 사관학교식 ‘국가 중앙 공공보건의료 교육 기관’을 세워 공공 의사를 매년 배출해야 한다. 이들은 지역 공공병원의 필수 의료 영역에서 일하거나 국가의 공공 보건 의료 정책 집행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본은 1972년, 정부와 47개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모아 공공의대인 ‘자치 의대’를 설립했다. 각 지방에서 추천할 학생을 선발해 보내면 자치 의대에서 면접 등 평가를 거쳐 선발하며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 모든 비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 졸업 후 9년간 출신 지역의 거점병원이나 진료소 등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하는데, 자치 의대에 입학을 원하는 지원자가 많아 입학 성적이 일본 의대 중 10위권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역의사제가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법안의 다소 미흡한 부분은 제도를 시행하며 하나씩 고쳐 나가야 한다. 부디 지역의사제가 모든 국민이 사는 곳에서 필요한 진료를 차별 없이 받을 수 있게 하는 의료 안전망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지역 의료, 필수 의료의 공백은 지역의사제 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오랜 세월 계속된 우리 사회의 의료 공공성 부족에 위기의 근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서둘러 의료의 공공성 강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야말로 지역과 생명을 살리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

김동은(의학 · 교수) entkde@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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