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시대와 이재명 정부의 5극3특 구상
AI 대전환의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인 무한경쟁에서 최첨단 기술시대의 주인공으로 살아남느냐 아니면 도태되느냐의 갈림길에 놓였다. 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은 갖추었다. K-Culture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와 자동차, 선박, 방위산업 등 전통산업을 비롯한 반도체, 배터리, AI, 로봇 등 첨단 기술분야도 세계적 수준이다. 신흥국가들이 당면하는 중진국의 함정이나 부채의 함정도 무사히 극복했다.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한국은 국제질서에서 ‘대체 불가능한 전략적 가치’를 가진 강소국의 반열에 성큼 올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 번의 큰 도움닫기로 일취월장하기에는 짊어진 짐의 무게가 너무 과중하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인구감소와 노령화이다. AI와 로봇이 인간노동력을 대체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노동인구의 총량은 국력과 국가경쟁력의 기본조건이다. 또 다른 악재는 인구의 일극 집중과 지방소멸이다. 특히 수도권 초집중 구조가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지역사회가 황폐해지고 공동화되고 있다. 과도한 지역 불균형은 필연적으로 비효율과 비용 증가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 위기로 전이된다. 대외적 환경도 쉽지 않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도전 세력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무역 및 관세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전쟁이 발발했다.
이에 따라 유가상승, 주가폭락, 환율급등, 물가상승, 자원부족이 이어지면서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내우외환이 겹친 이러한 사면초가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지역통합이라는 자구책을 준비했다. 당면한 난제를 극복하려면 기존의 성장 방식으로는 국가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통합추진을 위한 과감한 재정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5극3특’ 구상이 단순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아니라 국가 공간구조를 재편하려는 전략적 시도임을 보여준다.
● 지역균형발전에서 ‘다극국가’로 전환
5극3특 구상의 핵심은 대한민국을 단일 중심 체제가 아닌 다핵 분산형 국가(multinodal state) 즉 네트워크형 국가체계로 전환하는 데 있다. 기존의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 중심 정책이 ‘분산’에 머물렀다면, 이번 구상은 각 지역을 자립적 성장거점으로 기능하는 ‘극(pole)’이자 ‘노드(node)’로 만드는데 초점을 둔다. 5극은 수도권을 포함한 5대 초광역 경제권을 지칭하고, 3특은 제주, 강원, 전북 등 특화형 자치·산업 지역을 말한다. 정부는 5극3특 구상을 통해 대한민국 구조 개조의 시발점으로 삼으려 한다. 기존의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수준이 아니라, 산업·교육·교통·재정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는 종합적인 전략노선을 설정한 것이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 주도의 획일적 계획이나 개발이 아닌 지역 스스로가 성장전략을 설계하고 주도하는 ‘자치 기반 경쟁체제’로 전환시키려 한다.
몇몇의 지역에서 통합 또는 초광역 협력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은 메가 시티 논의를 재점화하고 있고, 가장 먼저 통합논의와 준비를 시작한 대구·경북은 행정통합 막바지 단계에서 주춤하고 있다. 광주·전남은 에너지·산업 중심 통합에 합의하고 정부가 준비한 제도적 재정적 허들을 통과했다. 충청권은 행정수도의 완성 및 광역연합을 구상하고 있으나 대구·경북과 마찬가지로 지방선거와 맞물려 답보상태에 있다. 최근의 지역통합 시도는 과거의 선언적 수준을 넘어 법적·제도적 통합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정부가 4년간 최대 20조 원의 파격적인 재정지원책,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부여라는 당근책을 제시하면서 실질적으로 지역통합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 지역통합의 전략적 계산
이재명 정부가 발주한 ‘지역통합’ 전략은 지방시대의 출발점으로 매우 적절한 한 수였다. 현재 한국의 행정구역은 형식상 지역별로 세분화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생활권, 경제권이 이미 광역화되었다. 문제는 이 둘 사이의 괴리로 인해 지역발전의 비효율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광역행정통합을 하면 다음과 같은 구조적 효과를 유인할 수 있다. 산업·인구·재정 기반 확대 등 규모의 경제, 지역 간 중복 투자를 조율하고 정책적 분절 상황을 완화하는 등의 행정 효율성 확보가 가능하다. 또 교통·에너지·물류망을 연결하고 산업간 연계를 강화할 수 있는 광역 인프라 구축 등을 할 수 있다.
특히 교육 차별과 질적 저하의 문제를 해소할 통합교육생태계를 구축하면 교육 효율성 제고뿐만 아니라 청년층의 정주 인구를 유인하고 지역 내 일자리를 확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교육부가 시행한 글로컬 30, 라이즈(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사업처럼 지역대학과 지방정부, 지역기업들이 연계해 지역기업 맞춤형 연구지원을 할 수 있다. 그러면 교육과 연구, 일자리가 연계된 독립된 지역공동체가 조성된다.
● 대구·경북의 구조적 조건과 통합전략
대구와 경북은 역사·문화·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생활권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대구광역시는 소비·서비스 중심 도시로, 경상북도는 제조업과 농업·어업 기반 지역으로 기능하면서 상호 보완적 발전 가능성이 제약된 부분도 있었다.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대구·경북 통합은 5극3특 실천 모델로 적합하다. 인구 5백만 규모의 잠재적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통합 시 단일 광역경제권으로서 ‘남부 내륙 성장축’을 형성할 수 있다. 현재 대구·경북 통합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를 넘어 구체적 제도 설계 단계에 진입했다. 양 지자체는 행정통합을 위한 공동연구와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중앙정부 역시 특별법 제정과 재정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핵심 논제는 단일 광역정부 형태의 행정체계 통합, 통합 재정 기반 확보 및 자율성 확대를 위한 재정 구조 재편, 중앙정부 권한의 대폭 지방 이전을 포함한 권한 이양 등이다. 대구·경북 통합은 단순한 ‘연합’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과 기능을 갖춘 초광역 자치정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과거 시도들과 차별성이 있다.
만약 대구·경북이 통합되면, 경제적으로 산업 클러스터 형성, 투자 유치 경쟁력 강화, 노동시장 통합에 유리하다. 공간 활용 면에서는 광역 교통망을 구축하고 생활권을 통합하여 편리한 지역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제도적으로도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고 행정의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 대구·경북지역통합의 쟁점과 한계
많은 장점과 긍정적인 기대효과에도 불구하고 대구·경북지역통합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쉽게 풀 수 없는 구조적 장애 요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 정체성의 충돌이 예상된다. 대구와 경북은 1981년 7월 대구직할시 승격으로 분리된 후 근 45년 만에 재결합하는데, 그간의 행정분리로 인해 대구와 경북의 정체성, 정서 및 문화적 간격이 상당히 벌어졌다. 지방 권력 구조 재편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도 변수이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통합이 대구시의회의 반대로 무산된 것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 때문이다. 따라서 효율성 논리만을 고집하기보다 사회적 합의의 형성이 필요하다.
투표를 통해 주민들의 선호를 묻자는 대전-충남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통합 이후의 자원배분과 생활권 변화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 자립적 성장 역량도 문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두 단체가 통합된다고 산술적 덧셈처럼 역량이 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방을 먹여 살릴 산업적 기반과 책략을 갖추어야 생존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통합시기의 적정성과 당위성이다. 대구·경북 통합은 생존과 진화를 위한 필연적 선택이고, 적기이다. 이는 곧 수도권 과집중과 지방의 붕괴를 막고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