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헌법재판소의 지위와 역할

  • 등록 2025.03.18 17: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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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원과 권한, 위상에 관한 간략한 소개

 

● 헌법재판소의 설립배경

독자들은 최근 매일 같이 헌법재판소에 관해 언론보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목도했을 것이다. 서울 종로구 재동의 헌법재판소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법적 공방이 전 국민의 관심하에 조명되는 것은 오늘날 낯익은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서 항상 그러하였던 것은 아니다.

전 세계로 시야를 넓혀 보더라도 특별한 재판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가 제도적으로 안착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물론 재판을 통해 입법을 비롯한 국가작용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 미합중국 연방대법원에서 비롯되었다(Marbury v. Madison, 1803). 그렇지만 일반법원에서 헌법적 문제를 다루는 방식(소위 ‘분산형’)이 아니라 헌법재판만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를 별도로 두는 ‘집중형’ 헌법재판 모델은 20세기 초반에야 비로소 오스트리아를 필두로 등장하였다.

이후 1950년대 독일 기본법에 의해 설치된 연방헌법재판소가 주목을 받으면서 이 모델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대한민국 등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흐름의 역사적 배경에는 행정권 우위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서 민주주의적 체제로의 이행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기존 사법부와 구별되는 새로운 정통성과 권위를 가진 재판기관이 헌법을 수호함으로써 새로운 헌법질서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큰 문맥에서 볼 때 1987년 민주화로 헌법재판소를 도입한 대한민국헌법도 이러한 흐름에 부합하는 경우이다. 물론, 우리의 경우 더 특수하고 복잡한 사정 역시 존재하였다. 1987년 개헌 과정에서는 1962년부터 1972년까지 채택되었던 분산형 헌법재판 모델, 즉 대법원이 위헌법률심판권한을 행사하는 체제로 복귀하는 방안이 비중 있게 검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취하자 여권이 그 대안으로서 헌법재판소의 도입을 제안하였고 이에 야권이 헌법소원 제도 즉, 국민이 직접 공권력작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주장할 수 있는 절차를 포함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동의하면서 합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여ㆍ야가 도출해 낸 합의의 제도적 형태가 헌법재판소였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당시의 예상과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성장을 이루었다. 1988년 개소 이후 합계 5만 건 이상의 사건을 접수, 처리하였으며, 그 중에는 동성동본 금혼, 행정수도 이전, 호주제, 간통죄, 낙태죄에 관한 결정 등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중대 사건들이 여럿 있다.

 

● 헌법재판소의 권한과 심판유형

헌법재판소는 특별법원으로서 헌법이 명시한 유형의 심판만을 담당할 수 있다. ‘위헌법률심판’은 일반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의 위헌 여부가 문제될 때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판단하는 절차이고, ‘헌법소원심판’은 재판을 제외한 입법, 행정작용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였을 때 이를 직접 다툴 수 있는 제도로 현재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심판유형이다. 일반시민이 당사자가 될 수 있는 헌법재판 유형은 대부분 이 두 가지이며 양자를 합산하면 전체 사건의 약 99%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들 사이,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 권한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로서 첨예한 정치적 쟁점들을 다루는 사건들이 많다. 국무총리 서리의 임명이 국회나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하는지, 법안의 날치기 통과가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ㆍ표결권을 침해하는지, 검ㆍ경 수사권 조정이 검사의 수사권을 침해하는지 등이 권한쟁의심판을 통하여 다투어졌다.

‘정당해산심판’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헌법에 반한다고 판단될 경우 그 정당을 해산하도록 하는 절차로서, 한편으로는 위헌정당으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헌법재판소 결정 없이 정부가 임의로 해산시킬 수 없도록 하여 정당을 보호하는 이중적 기능을 가진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통합진보당에 대하여 해산결정을 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매일 같이 보도된 ‘탄핵심판’이 있다. 탄핵심판은 공직자가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였는지 심리하여 위배행위가 인정되고 중대할 경우 그 직에서 파면하는 제도이다.

우리를 비롯한 여러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조차도 헌법이 정한 탄핵절차에 따라 파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는 기각결정을,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는 파면결정을 한 바 있다. 현재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은 헌정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 사건이다.

 

● 헌법재판소의 구성방식

이같이 국사에 관한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는 헌법재판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이 재판관 9인을 임명하되 그중 3인은 국회가 선출한 후보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자를 임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사실 개헌 당시 심도 있게 검토되었다기보다는 1972년부터 1987년 개헌 전까지 헌법에 규정되어 있었으나 실질적인 활동이 없었던 헌법위원회의 구성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임명절차는 오늘날 헌법재판소의 위상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적지 않으며 특히 대법원장에 의한 추천은 폐지하자는 견해도 적지 않다.

작년 10월, 3명의 재판관이 임기만료로 퇴임한 후 후임자 임명이 이루어지지 않아 헌법재판에 공백이 발생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에서 선출한 3인의 후보자 중 2명을 임명함으로써 헌법재판소는 현재 8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권한대행이 마지막 1명을 임명하지 아니한 행위에 대하여는 권한쟁의심판과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된 바 있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27일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관하여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 부작위는 국회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예비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하거나, 후임 재판관이 임명될 때까지 전임자가 직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자는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 글을 마치며

정치적 다수가 쉽게 바꿀 수 없는 헌법을 제정하고, 국가작용을 헌법의 해석을 통해 규율한다는 입헌주의적 기획은 이제 2백 년을 갓 넘은 인류의 새로운 실험이다.

물리적 폭력을 독점하고 강제력으로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국가, 리바이어던과 같은 국가를 헌법을 통해 길들이고 조정함으로써 국가작용의 정당성을 확보해 가려는 이 기획은 결코 당연한 것도, 쉬운 것도 아니며 수많은 기저의 조건들을 필요로 한다. 헌정질서를 떠받치고 있는 이 정치적, 사회적 조건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헌법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한데, 그 핵심적인 것 중 하나로 공직자와 시민들의 헌법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들 수 있다. 그것 없이는 아무리 좋은 헌법도 작동하기 어려운 까닭에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조동은(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교수) dejo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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