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 장구령(張九齡)

  • 등록 2015.11.23 18: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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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꿈이 많은 젊은이였지
헛디디다 때를 놓친 백발의 사내
그 누가 알았으랴, 거울 앞에서
안팎 사람 서로서로 가련타 할 줄....

宿昔靑雲志(숙석청운지)
蹉跎白髮年(차타백발년)
誰知明鏡裏(수지명경리)
形影自相憐(형영자상련)

*원제: 照鏡見白髮(조경견백발: 거울 속의 백발을 보고)
*張九齡: 중국 당나라의 시인.
*宿昔: 옛날. 여기서는 젊은 날.
*靑雲志: 원대한 포부를 실현하려는 뜻.
*蹉跎: 발을 헛디뎌 넘어짐. 시기를 놓침.
*形影: 자신과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

“어제는/ 나 그대와 같았으나/ 내일은/ 그대가 나와 같으리라.”유안진 시인의 「은발이 흑발에게」라는 시의 전문이다. 여기서 흑발은 물론 이팔청춘의 피가 펄펄 뛰는 젊은이들이고, 은발은 인생의 단 물이 죄다 빠지고 머리가 허옇게 센 늙은이들이다. 하지만 그 늙은이들도 한 때는 푸른 피 펄펄 뛰던 젊은이였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되는 것이 인생이다.

여기 옛날에는 검은 머리카락의 젊은이였던, 백발의 늙은이 한 사람이 있다. 인생의 봄날에는 그도 청운(靑雲)의 거대한 뜻을 품었다. 하지만 지금은 헛디디고 헛디디다 기회를 다 놓친 백발의 늙은이가 되어버렸다. 그는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서 거울 속의 얼굴을 쳐다본다. 피가 펄펄 끓던 시퍼런 젊은이는 도대체 어디가고, 다 늙어빠진 백발노인이 볼썽사납게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아니 거울 속에 저 사람이 정말로 나란 말인가? 거울 밖의 사내가 하도 기가 차서 거울 속의 사내에게 중얼거린다. “여보게 늙은이, 이게 도대체 어찌된 건가. 자네 꼴이 정말 말이 아니군.” 거울 속의 사내가 혀를 끌끌 차며 대꾸를 한다. “허허 그것 참! 자네 지금 남의 말을 하는군. 자네야말로 그게 어디 사람 꼴인가.” 꽃 피고 새 울던 봄날에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실의와 좌절 끝에 폭삭 늙은 사내를 이토록 서럽게 만나게 될 줄을!

이 세상 모든 흑발들아. 흑발에서 은발로 달려가는 길에는 잠시 동안 머무를 간이역도 없다네. 어 어 어 하다가 좋은 시절 다 놓치지 말고 하루하루를 귀하게 살아라. 이 세상 모든 흑발들아. 너희들이 더러 은발들을 몹시도 싫어한다며? 부탁한다, 그러지 마라. 늙었다고 은발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싫어하는 것이고, 미래의 너희들을 너희들 스스로가 싫어하는 거란다. 오늘은 너희들이 흑발이지만, 내일에는 은발이 되는 거란다.
이종문(한문교육 · 교수) jml413@gw.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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