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평론] 황진이가 페미니스트라고?

  • 등록 2006.12.03 11: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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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황진이', 부박한 영웅주의의 극치


그녀는 도도하다. 직업은 ‘천한’ 기생인데 여왕보다 더한 위엄으로 사내들을 부린다. 세상은 오직 그녀 황진이를 중심으로만 돈다.

KBS 드라마 ‘황진이’(극본 윤선주, 연출 김철규)를 보고 있노라면, 황진이(하지원 분)는 가히 시대의 부조리와 투쟁하는 여전사 같다. 그녀의 기개는 하늘을 찌르고 자존심과 ‘절개’는 대나무보다도 곧다. 놀랍게도 관기이면서 여태 ‘숫처녀’다. 이유는 단 하나, 첫사랑 은호 도령에 대한 절개를 지키는 까닭이란다.

일개 노비에 지나지 않는 황진이의 ‘자유혼’을 주위의 모든 이가 존중하고 귀히 여겨 털 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한다. 유독 그녀에게만 수청을 거부할 자유가 주어진다. 심지어 황진이의 드높은 절개를 위해 주위 여자들의 몸은 대리로 이용돼도 당연하다는 투다. 벽계수(류태준 분)가 단심이(이인혜 분)를 품는 과정은 기녀의 ‘몸’에도 위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주인공 진이를 위해 다른 모든 여자들의 몸은 소품으로 전락했다.

황진이의 당당함은 군왕 못지않고, 교방의 다른 숱한 기녀들은 모두 황진이를 위한 몸종 혹은 들러리처럼 보인다. 지상의 남자들은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기녀가 시대의 통념과 관습을 무시한 채 저 홀로 독야청청할 수 있다는 발상은 여성 시청자들을 겨냥한 부박한 영웅주의일 뿐이다. 기녀의 몸은 곧 만인의 몸임을 통렬히 깨달았던 ‘시대의 선각자’ 황진이는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선 이후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지금의 전개로는 ‘누가 그녀와 잤을까?’만이 극의 초점이다. 황진이가 어떤 남자와 얽히느냐에만 관심을 둔 말초적인 플롯이야말로 실은 황진이를 가장 능멸하는 길이다. 황진이가 당대에 이름을 날렸던 이유는 높은 문학적 성취 때문이었다. 황진이의 위대함은 그야말로 관념의 성취였다.

그런데 KBS 드라마 ‘황진이’에는 오직 색(色)만이 있다. 1억원을 호가하는 오색 한복들을 비롯해 고증을 거치지 않은 온갖 춤들, 거문고를 뜯는 모습과 풀어지는 옷고름으로 함축되는 ‘합방’ 장면 등등 시청자가 기생을 떠올릴 때 상상하는 그 모든 비주얼을 다 갖추었다. HD 화질을 위해 전국의 비경을 훑는 고단한 카메라까지 그야말로 눈요깃거리는 다 있다.

‘황진이’는 기녀에 대한 통념 바로 그 자체에 기댄 드라마다. 기녀란 오직 ‘몸’의 존재라는 것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황진이의 빛나는 시와 시조들은 오직 합방을 위한 ‘추파’에 지나지 않는다.

황진이가 ‘기녀의 몸은 만인의 것’이라며 자신의 몸을 기꺼이 던지는 순간은, 오직 시청자의 관음증과 인터넷 연예 신문들의 떡밥으로만 요긴하게 쓰일 뿐이다.
김원(데일리서프라이즈ㆍ칼럼리스트) 개인정보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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