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누릴 수 있습니까?

  • 등록 2021.11.01 13: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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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학칙 위헌성 논란

여러 대학에 ‘사전 승인’ 존재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인권위도 “일부 학칙 인권 침해” 지적

 

위헌 학칙 대부분은 군사정권 잔재

민주화 이후 폐지 혹은 사문화

‘사전 승인’, ‘시위 금지’ 형태로 남아

 

전문가 “현행 학칙 문제” 입모으지만

학칙 개정에 학생 참여 어려운 실정

국회 고등교육법 개정안 주목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이어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선언한다. 대표적인 자유권적 기본권이자, 87년 헌법의 핵심 요소로 평가받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헌법 규정이다. 헌법은 국내의 모든 법률, 명령, 조례, 규칙의 최상위 규범으로 작용한다. 즉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 등은 부당한 것이며, 법률이나 규칙 등을 제정할 때부터 헌법의 지도 원칙에 따라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으로부터 유독 자유로운 공간이 있다. ‘진리의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가이다. 국립대와 사립대를 막론한 여러 대학들은 학내 게시물에 대해 총장 혹은 관계기관의 ‘사전 승인’을 요구한다. 만약 이를 어긴 게시물은 ‘적법’하게 철거될 수 있고, 그 정도에 따라 대자보를 게시한 자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수도 있다. ‘총장’ 혹은 ‘관계기관’을 각각 ‘대통령’과 ‘정부’로 치환한다면 1987년 민주화 이전 대한민국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해진다. 민주화 34년째를 맞은 2021년의 대한민국에 아직도 ‘치외법권’ 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 ‘유신 학칙’ 잔재 여전

지난 9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광주 소재 4개 사립대(광주과학기술원·광주대·조선대·호남대)의 일부 학칙이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4개 사립대가 헌법 제37조 제2항이 제시한 기본권 제한 요건(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을 충족하지 못한 채 헌법이 보장하는 학생들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조사 대상이 된 대학들은 무분별한 간행물 제작으로 학내 면학 분위기 저해, 왜곡된 정보의 유포, 학내·외 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해당 학칙을 적용한다고 인권위에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처럼 많은 대학들은 학칙에 근거하여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학칙이 학생들의 간행물 발간이나 게시물 부착 등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유신 체제가 성립한 이후부터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학생운동을 탄압하고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통제하기 위해 전국 대학의 총학생회를 ‘학도호국단’으로 대체한 바 있다. 학생활동에 관한 학칙들 또한 이 시기 작성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비록 대학 학도호국단은 1985년에 폐지되고 총학생회가 부활했지만 이후에도 학생자치활동은 각종 규제에 시달려야 했다. 전두환 정권은 ‘학도호국단 운영 규정’을 대체하여 ‘학생자치기구 운영 지침’을 각급 대학에 하달했는데, 학생회 부활을 조건으로 ▶학생의 정치활동 금지 ▶학생회비 집행의 감독 ▶학생대표자의 자격 제한 등을 학칙에 반드시 삽입하도록 했다. 민주화운동의 중추로 작용하던 학생운동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이러한 내용은 민주화 이후에 대부분 폐지되거나 사문화되었지만 ‘게시물 발행 시 총장의 사전 승인’, ‘면학 활동에 지장을 주는 집회·시위의 금지’, ‘매년 학생지도계획 수립’ 등의 형태로 잔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 지역대학 학칙 살펴보니

<계명대신문>의 취재 결과, 대구·경북 지역대학 대부분이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규정을 학칙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학교의 경우 ‘학생활동 관리 내규’를 통해 인쇄물·간행물 등을 배포할 때 지도교수를 경유하여 총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으며, 현수막을 포함한 게시물은 총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 지정된 장소에 게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회를 포함한 일체의 행사 또한 구비서류를 제출하여 총장의 승인을 받지 않는다면 개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아울러 학칙 제84조(징계) 제1항 제9호를 보면 “불법행사를 개최하거나 불온한 인쇄물 배포, 게시물 부착, 유언비어 유포 등을 한 학생”은 징계 처분을 받을 수 있는데, ‘불온한 인쇄물’의 기준이 모호한 탓에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규제할 우려가 있다.

 

경북대는 ‘경북대학교 학생 활동 및 지도 규정’ 제11조에서 학생회 등 학생단체에서 발행하는 간행물과 학생회 및 학생단체가 주최하는 집회 및 행사에 대하여 사전에 총장 혹은 대학(학부)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 대자보 등 유인물의 경우 교내 지정 게시판 또는 특별히 허가된 장소에만 게시하도록 하고 있다.

 

영남대 또한 인쇄물 배포나 학내 집회를 진행하고자 할 경우 일정한 절차를 준수하여야 한다. 영남대는 총장의 사전 승인이 아닌 ‘신고’를 요구하고 있어 비교적 요건이 간소한 편이다. 다만 ‘영남대학교 게시물 관리 규정’에 의하면 게시물의 내용이 교육목적과 사회통념, 학칙 등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고, 특정 종교 및 정치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될 경우 철거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위헌 학칙’, 어떻게 고쳐야 하나

전문가들은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학칙들은 위헌 소지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김상호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평소엔 이런 학칙의 존재가 문제 되지 않더라도 대학 내 문제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할 때 대학이 개입할 근거 조항이 될 수 있다. 사문화됐으니 괜찮다는 이유로 관행적으로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2013년 더불어민주당 박주민(당시 변호사) 국회의원은 <중앙문화>와의 인터뷰에서 “‘신고’는 어느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 ‘허가’는 원칙적으로 금지된 것을 예외적으로 가능하도록 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학칙상 ‘승인’이라는 표현은 ‘원칙적 금지’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칙 개정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우선 학칙 개정 절차에 학생들의 참여가 보장돼있지 않은 점이 문제다. 우리학교 학칙에 따르면 학칙 개정안 발의권은 해당 학칙을 주관하는 부서의 부서장에게 있고 이에 관한 의견 제출도 각 부서장이 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절차를 거쳐 마련된개정안은 교무회의 및 대학평의원회의 심의를 통해 총장이 공포함으로써 확정된다. 결국 학생들이 학칙 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은 대학평의원회 뿐인데, 학생 위원의 비중이 낮고 학생들의 여론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맹점이 있어 사실상 학생들의 참여는 보장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 탓에 국회가 고등교육법을 개정하여 학생들의 학칙 개정 참여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13년 배재정 의원 등 21인은 학생대표의 학칙 개정안 제출권, 학교장의 자치활동 개입 금지 등을 추가한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어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학생회와 동아리, 학생언론기구를 법제화하고 이에 관한 학교의 부당한 개입을 금지하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이 또한 본회의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학생들의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한솔 기자 losnah0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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