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모든 국민’ 책임? … 기업과 정부가 주범

  • 등록 2021.09.06 12: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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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과 부자들의 탄소배출량이 압도적

‘ESG’, ‘탄소중립’은 책임회피용 공문구일 뿐

기후위기 극복하려면 자본주의에 저항해야

 

● ‘비관적 지성’과 ‘의지의 낙관성’

지난 8월 9일에 발표된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후 방어선’인 지구 온도 1.5도 상승 시기가 3년 전보다 10년 앞당겨진 2040년이 된다. 그리고 산업화 이전 대비 1.1도 상승한 2021년도 기록적인 폭염, 가뭄, 홍수, 초대형 산불, 슈퍼 폭풍 등 극단적 기상이변을 경험하고 있는데, 1.5도 올라가면 폭염 발생빈도가 지금보다 2배 증가하는 등 초극단적 기후변화가 일상화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번 보고서의 핵심은 지구온난화가 화재가 났을 때 발동하는 적색경보(Code Red)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의 진행 속도가 더욱 빨라졌고, 인류가 대응할 시간은 짧아졌다는 데 있다. 급박한 기후위기의 상황에 맞게 사회 전반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기후 안정화를 위한 사회 전환의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불확실하게 전망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비관적 전망인 기후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사회적 의지와 실천으로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후위기의 원인과 주류적인 기후대응 방안을 비판적으로 고찰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래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기후 정책을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한계점을 지적할 것이다.

 

● 기후 불평등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다음과 같은 기후위기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경축사의 11줄에서는 기후위기 정책의 핵심 기조가 담겨있다. 첫째로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모두의 책임론을 제시한다. 이는 국민과 기업, 정부가 같은 비중으로 기후대응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책임론은 기후 불평등 관점에서 보면 타당하지 않다. 현재 체감하는 기후변화는 100여 년 전부터 배출된 이산화탄소로부터 영향을 받기에 이산화탄소의 누적 배출량을 통해 역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2015년까지 배출한 미국의 누적량이 전체 누적 배출량의 25%이고 유럽연합 28개국은 22%인 반면 아프리카와 남미는 각각 3%에 해당한다. 2016년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량 1위는 중국(29%)이고 미국(14%)이 2위이다(2008년 경제 위기로 주춤한 미국 경제와 달리 중국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함에 따라 순위가 뒤바뀌었다). 세계 8위인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64%를 차지하는 반면 나머지 200여 개 국가의 배출량은 36%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옥스팜과 스톡홀름 환경연구소에서 발간한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의 가장 부유한 10%가 25년간 누적 탄소 배출량의 52%를 차지했다. 누적 탄소 배출량의 무려 15%를 최상위 1% 부자가 배출했는데, 이는 하위 50% 극빈층 배출량(7%)의 2배 이상에 달하는 비중이다. 이러한 점에서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배출한 책임은 화석연료를 토대로 경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국가와 부자들에게 있다.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순위의 10위 안에 속하는 한국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영역은 석탄화력발전소와 더불어, 2019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기업인 포스코, 현대제철, 삼성전자, 쌍용양회 공업, S-OIL 등이다. 이러한 온실가스 배출량 지표들이 보여주고 있는 진실은 온실가스 문제에 책임이 있는 집단이 ‘모든 국민’이 아니라 ‘기업과 정부’라는 점이다.

 

● 녹색 위장술

둘째로 정부와 기업은 현행 자본주의를 유지 및 성장하기 위한 돌파구로 기후위기 대응을 활용한다. 현재 기업 및 금융계에서 제시하는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인데, 이는 환경 및 사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경영 전략이다. 기업의 이러한 전략은 온실가스를 단기간에 대량 감축하는 방식보다는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 경영 방식을 유지면서도 최소의 비용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평판 위험(reputational risk) 관리 수단 혹은 임기응변식 대응이다.

 

대표적으로 포스코의 사례를 통해 ESG가 녹색위장술(green washing)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 한국생산성본부가 2020년 12월 발표한 ‘기업 ESG 실태조사 및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포스코는 ‘K-ESG’ 평가 점수에서 61.08점을 받아 최상위 등급인 A등급을 차지했고, 포스코 자회사 포스코 인터내셔널 역시 ‘사회’ 부문에서 A등급(21.30점)을 받았다. 이러한 A등급의 이면에는 포스코 작업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와 포스코 인근 지역에서 공해로 피해를 입고 있는 주민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지난 5년간 포스코의 산재법 위반 사항은 7천여 건, 산재 사망자 수는 43명이고, 작년 11월 고용노동부가 전남 광양제철소에서 실시한 특별감독에서 추락 방지 조치 미이행과 안전작업계획서 미작성 등 무려 598건의 법 위반사항이 있었다. 그리고 포스코는 연간 약 8천만 톤(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데, 이는 국내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12%를 차지하는 양이다. 제철소에서 발생하는 쇳가루 분진 등 대기오염 피해로 인해 인근 주민은 만성 호흡기 질환과 각종 암 질병을 호소하고 있다. 그 외에도 최근 포스코 인터내셔널은 미얀마 민주정부를 정복시킨 군부와의 유착관계에 있다는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는 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 기업을 지원 및 육성하는 정책 방향이 아니라, 온실가스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서 기후위기 대응의 선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기업을 강제해야 한다.

 

● 위선적인 정부 정책

셋째로 정부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실현 가능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제시했다고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서 배출량을 ‘0’으로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탄소중립은 배출량을 줄이고 남은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할 삼림 흡수와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활용 기술 등을 통해 탄소 배출이 ‘0’이 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실질적으로 배출량을 줄이기보다는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삼림 흡수와 저감 기술 등을 통해 상쇄하겠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이 아닌 기술적 해법과 해외 삼림 흡수 등 시장 제도와 현행 경제성장 방식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가 반영된 용어이다. 이산화탄소를 실질적으로 감축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덜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자본주의 축적 방식을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방식대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정부는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유지한 채 기후위기 대응을 모색하기에 공학적 기술이나 다른 나라로의 감축 전가를 강조한다. 2050 탄소중립의 3개 시나리오 중 2개는 탄소중립조차도 도달하지 못하는 시나리오다. 또한 3개의 시나리오에는 산업부문 에너지 사용량은 단 1%도 줄이지 않고 기존 방식 그대로 유지하고 핵발전소에 대한 감축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정부의 ‘2050 탄소중립’에는 정의로운 전환이 강조되지 않는다. 새로운 혁신으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장밋빛 환상만을 제시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와 기존 자동차 공정을 비롯한 제조업 생산구조의 변화 등에서 발생하는 실업 및 지역 경제 위축 등 발생한다. 기업은 이러한 상황을 인원 감축, 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의 빌미로 삼는다. 이러한 점에서 기후위기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사회계급은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평범한 이들과 노동계급에게 위기의 비용이 전가되거나 위기를 감내하는 방식이 아닌 기후위기로 발생하는 사회적 불의를 제거하는 기후 대응 방식이 제시되어야 한다.

 

또한 한국판 그린뉴딜 정책의 핵심 목표는 세계 국가 및 자본 간 경쟁 속에서 한국 경제를 추격 국가에서 선도 국가로 도약하려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는 현 단계에서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비중이 높은 개발도상국에게 재생에너지 보급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투자는 유지하면서 신규 해외 석탄산업 투자의 중단을 약속했을 뿐이다. 이는 정부가 한국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선택한 석탄화력발전에서 나오는 이윤 획득을 세계 차원의 온실가스 배출감축보다 우선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에서 언급한 ‘신재생에너지’는 사회 통념으로 알고 있는 순수한 재생에너지가 아니다. 이는 연료전지, 석탄액화 · 가스화, 수소에너지 등의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 8개 분야, 즉 태양열과 태양광발전, 바이오매스, 풍력, 소수력, 지열, 해양에너지, 폐기물에너지 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재생에너지가 아닌 신에너지 비율이 더 높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실질적 해결책

문재인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은 말로는 사회 · 경제적 대전환을 외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세계 경쟁 속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그린 뉴딜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윤 추구가 목표인 자본주의의 성장 동력에 저항하지 않고서는 기후위기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성에 기댄 기후위기 대응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에 토대를 둔 실천이 필요한 시기이다.

 

 

<광복절 경축사> 중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해, ‘2050 탄소중립 선언’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환경을 위해 자발적으로 실천해 온 우리 국민들과, ESG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선 기업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세울 수 있었던 이정표입니다.

 

정부는 지난 5일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토대로 국민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고 올해 안에, 실현가능한 2030년 감축목표를 공약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2050 탄소중립’은 결코 쉽지 않은 목표지만 그렇다고 부담으로만 인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인 사회·경제적 대전환은 지금까지 유례가 없었던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친환경차와 배터리, 수소경제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워왔고 석탄 발전을 줄이면서 태양광, 해상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확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가고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선도적으로 저탄소 경제 전환을 추진해갈 것입니다.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의 폭도 넓혀나가겠습니다. 특히 석탄화력발전 의존도가 큰 개발도상국들의 에너지 전환을 돕고, 우리의 ‘그린뉴딜’ 경험과 녹색 기술을 공유하겠습니다.

 

김민정(성공회대·사회과학연구소·연구위원) good21lif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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