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코너에 몰려 불면증으로 또 밤을 새버린 어느 날에나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담아두고만 살았지 구체적으로 떠올려본 적은 없다는 것. 무엇이, 어떤 것이 나인가. 나는 이제껏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하강의 이미지로서의 고민이었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 내가 세상을 싫어하는 이유... 아래로 심연으로 구렁텅이로 파고들어가는 날들의 연속. 나는 ‘더 높은 곳의 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짧은 여행 중 만났던 새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히 날고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는 새. 자신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가 봤을 땐 제자리에 머물며 어떤 것도 해내지 못하는 존재. 여행 중 마주했던 그 새는 또 다른 나였다.
생(生)을 표현할 다른 단어를 찾다보면, 나는 언제나 정오(正午)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태양이 머리 위에서 작렬하고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며 내가 나 자신이 되는 때. 정오를 마주하며 그 새는 나에게 이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새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날개 달린 새’로서의 삶을 살고 있을 뿐. 날고 있다는 것 자체로 새는 자신이 된다. 생을 산다는 것 자체로 나는 자신이 된다.
진정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삶을 생각하기 이전에 우선 살아야 한다. 당신은 오늘 하루 몇 분이나 살아있었나요? 눈을 뜨고 말을 하며 죽어있지는 않았나요? 뻔한 말이긴 하지만 현재를, 자신으로 살 것. 이를 실천하는 삶의 모퉁이에서 우리는 정오,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때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