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만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떨어진 꽃잎 위로 햇살이 얇게 깔렸다. 벚꽃나무는 푸른 잎을 언뜻언뜻 비추며 자꾸만 몸이 간지럽다 말한다. 벌거벗은 몸으로 지난 겨울을 보내다, 봄날의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가까스로 피워낸 꽃들이지만 나무는 미련이 없다. 화려함을 홀홀 벗어낼 줄 아는 벚꽃나무의 겸손한 마음은 사람들 기억 속에 더욱 아름답게 남도록 해준다.
정상에 서서 어깨를 으쓱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담을 이야기해주며, 남들로부터 부러운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그 순간 ‘성공한 만큼 남들의 행동이 다르다’는 말이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며, 항상 얄밉게 행동하던 친구가 부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척이나 벅찰 것이다. 이 감정들은 벚꽃나무의 꽃처럼 너무나 소담스럽다.
하지만, 벚꽃이 가을이 되어서도 피어있다고 생각해보자. 다른 나무들은 마른 잎을 톡톡 떨구며 겨울을 준비하고 있지만, 벚꽃나무만 화려하게 피어있다. 아름다운가? 벚꽃나무는 벚꽃이 피어있지 않아도 벚꽃나무다. 사람들은 봄날에 그 나무가 아름다운 벚꽃을 피워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길고 추운 겨울과, 꽃샘추위를 견뎌내고 아름다운 벚꽃을 피워냈다는 사실에 더욱 기특해할 것이다. ‘공성신퇴(攻城身退)’라는 사자성어처럼 미련없이 떠날 줄 아는 것도 성공에 있어 필요한 미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