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는 지혜와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올해 토끼해를 맞이하여 누구나 토끼처럼 지혜로운 사람, 풍요로운 한해를 꿈꾼다. 인간이 토끼를 지혜로운 동물로 생각하는 것은 눈이 밝기 때문이고, 토끼를 풍요의 동물로 생각하는 것은 묘(卯)가 논밭으로 나가는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동물의 행동양식을 통해 나아갈 길을 배운다.
토끼가 지혜를 상징하는 내용은 어두운 밤 달나라에서 방아 찧는 얘기, 용궁에 간 토끼가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꾀를 내서 위기에서 탈출한 얘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토끼가 풍요를 상징하는 내용을 ‘산토끼’ 노래에서 찾고 싶다. 토끼해를 맞이해서 새삼 ‘산토끼’노래가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깡총 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산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토실토실 알밤을 주워 올테야”라는 이 노래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불렀던 이른바 ‘국민동요’다.
산토끼는 깡충 깡충 뛰면서 고개를 넘어 가고 있다. 사람도 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어쩌면 평지보다 고개를 많이 넘어야 하는 게 인생일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재학생은 물론 신입생마저 매일 힘든 고개를 넘어야 한다. 그런데 산토기는 고개를 혼자서 넘는다. 인생도 결국 고개를 혼자서 넘을 수밖에 없다. 학생들도 매일 매일 고개를 혼자서 넘어야 한다. 그러나 혼자서 고개를 넘는다고 해서 외로워할 필요는 없다. 고개를 넘어야 외롭지 않기 때문이고, 외로워야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토끼가 고개를 넘는 까닭은 알밤 때문이다. 학생들이 대학에 온 이유 중 하나도 ‘알밤’ 때문일 것이다. 알밤은 그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고개’를 넘어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간혹 고개도 넘지 않은 채 알밤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를 ‘수주대토(守株待兎)’라 한다. 이 고사는 다음과 같은 사연을 담고 있다.
중국 송나라의 한 농부가 하루는 열심히 밭을 갈고 있었는데 산 위에서 달려오던 토끼가 우연히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는 걸 보았다. 농부는 죽은 토끼를 잡아들고는 매우 기뻤다. 다음날부터 농부는 힘든 밭 갈기를 포기하고 하루 종일 그루터기에 앉아 토끼가 부딪히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가 다시 올 리 없었고, 그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중국의 고전 『한비자(韓非子)』 「오두편」에 나오는 이 말은 노력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는 사람을 꾸짖고 있다. 사람이 어떤 결과를 얻으려면 송나라 농부처럼 살지 말고, 산토끼처럼 깡충 깡충 열심히 뛰어야 한다. 간혹 사람들은 열심히 뛴다고 반드시 어떤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특별한 방법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열심히 살지 않고 알밤을 얻는 법은 없다. 물론 기발한 생각도 좋은 방법이지만 성실한 일상도 특별한 방법 중 하나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길이 있지만, 가장 아름답고 멋진 것은 ‘자신의 길’이고 ‘일상의 길’이다.
‘산토끼’ 노래는 이일래(1903~1979) 선생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선생이 당시 1살이던 딸 명주를 안고 재직 중인 이방초등학교 뒷산인 고장산에 올라가 깡충깡충 뛰는 산토끼를 보고 만든 것이다. 선생은 깡충 깡충 뛰어다니는 산토끼를 보면서 민족의 해방을 생각했다. 그러나 일제는 이 노래가 민족감정을 유발시켰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
이처럼 ‘산토끼’는 일상에서 만든 작품이고, 평범한 노랫말은 거창한 민족의 해방을 고취시켰다. 우리는 그 동안 친일파인 홍난파를 기억했지만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고향의 봄’과 ‘오빠생각’을 만든 이일래 선생은 잊고 있었고, ‘산토끼’가 대구 인근의 경남 창녕군의 우포늪 옆 이방초등학교에서 탄생했다는 것도 잘 모르고 지냈다. 우리의 꿈과 희망도 언제나 캠퍼스에서 잉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