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사를 테러와 경찰 활동을 중심으로 관찰하면 크게 9.11 사건 이전과 그 이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를 넘어서기까지 국가의 내적 질서와 인권의 팽팽한 긴장 관계 사이의 무게 중심이 지속적으로 인권의 방향으로 이동했고, 그 즈음 9.11 테러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그 중심축의 방향은 급속도로 선회하고 있다. 이렇게 불안하고 혼란한 위험 사회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비즈니스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전쟁 산업을 실행하는 그림자 전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책 “용병” 이 보여준다. 경호 업체인 ‘블랙워터’의 경우 이라크 전쟁 이후 2003년부터 18개월 동안 600%의 매출을 기록해 급속도로 성장해 왔다. 네이비실 출신의 에릭 프린스와 알 클라크가 1997년 미국에 세운 이 회사는 미국이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 셈이다.
이 업체는 미 국무부와 시설 및 요인 경호 계약을 체결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에까지 진출했다. 심지어 정예 미군보다 훨씬 더 많은 전투경험 및 첨단장비로 무장한 이들은 교전 시 미군들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포로를 심문하고 특수 분야의 업무를 수행하는가 하면 정규군도 하기 어렵다는 국경을 넘나드는 테러 용의자들을 추적하는 활동까지 맡아 하고 있다.
‘프라이빗 시큐리티’(private security)라 불리는 이 같은 민간 경비업은 1853년 미국에서 핑커튼(Pinkerton)이 자신의 이름으로 탐정·경비회사를 설립한 이래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자양분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일반적으로 경비 내지 경호원은 돈을 받고 안전을 지켜주는 수동적인 역할만을 담당하는데, 이른바 ‘용병’(mercenary)은 돈을 받고 고용되어 싸우는 전투병인 셈이다. 그러나 블랙워터와 같은 민간 군사 청부인(private military contractor)의 등장으로 이러한 구분은 점차 모호해 지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고객을 위해 무장하는 경비원이나 용병의 등장은 국가 강제력독점(Gewaltmonopol)이라는, 국가 성립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홉스의 기본 사상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 이상 강제적 폭력은 국가에서 독점하고 있지 않으며, 교활한 현대국가는 이들 용병을 사용하여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라크에서 정부를 대신하여 미국인들을 보호하던 블랙워터의 용병들은 이라크 민간인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해 민간인 17명의 목숨을 빼앗은 바 있다.
국가는 게릴라전이나 테러리스트의 고문과 같은 어렵고 지저분한 업무에 더 이상 깊숙이 개입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라크에서 총을 든 자들은 더 이상 세계 평화 유지나 애국이라는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다. 이들은 하루 700달러 이하의 의뢰는 받지도 않을 것이며 무공훈장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투 지역에서도 작전이 끝나면 수영장에서 맥주와 여자를 곁에 두고 즐길지도 모른다. 이들의 사업은 앞으로도 쉬이 위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0.8.31 이라크 작전의 종료를 선언했다. 더 이상 이라크에 미군은 없다. 그러나 위험은 존재한다. 새로운 시장의 문이 열리고 있다.